옛 속담에 콩 한조각도 나눠 먹거나 개떡 하나라도 옆집, 건너 집까지 나눠 먹는 것이 우리 민족의 인심이요, 정서다. 이렇게 아름답게 우리 사회를 지켜온 미풍양속이 이제 도심 아파트 안에서 점점 사라져 간다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요즘은 자기가 사는 아파트 앞집에 누가 사는 지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바쁜 생활 탓에 나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과 내 이웃과 함께 하는 여유가 없다고 핑계를 돌리지만 그 전에 알량한 자존심과 무관심이 우리들을 힘들게 하며 상대방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은지.

필자는 오랫동안 살던 정든 집을 정리하고 이사를 했다. 식구도 단출해지고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것이 좋겠다 싶어 집을 줄여 이사했다. 야간학교 교장 활동 특성상 나서면 밤 10시가 넘어 귀가하다 보니 이웃과 인사를 나눌 겨를도 없어 이웃을 마주칠 때는 멋쩍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사를 떠나기 전날 밤, 같은 아파트 한 통로에서 오랫동안 함께 한 이웃들을 모른척하고 훌쩍 떠난다는 것이 아쉬워 퇴근 후 아내와 집을 나섰다. 그것은 마지막 인사라기보다 훈훈한 이웃 간에 나누는 정이며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집 현관의 벨을 눌러도 기척이 없어 돌아서는 순간, 늘 필자에게 친절했던 경비아저씨가 계단을 올라와 필자 앞에 섰다.

"웬 남자가 초인종을 누른다는 신고가 있어 오는 중인데 선생님이시군요.”

"내일 이사를 떠나기 전에 인사를 드리고 가려고요.”

"요즘 이웃사촌이란 말은 다 옛말인 것 같습니다.”

경비아저씨의 그 말에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한편으로 너무 섭섭한 마음에 견딜 수 없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생각할 줄 알고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능력이다. 가끔 마주쳐서 내 얼굴을 알 텐데 내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철저한 신고정신부터 발휘하는지, 세상이 이렇게 변했나 싶어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섰다. 그는 무슨 잘못이 있어 인터폰으로 바로 확인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다 신고할 생각을 먼저 했을까.

창백한 인텔리. 이것은 소심한 나머지 말만 극대화시키고 행동은 극소화하려는 지식계급의 폐쇄적 통폐를 지적한 말이다. 현대사회로 진입하며 소심하고 통폐적인 인간으로 모두가 변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따스한 한국인의 정이 사라져 가고 삭막한 바람만 불어오는 요즘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한 번 맺은 정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떠나간 낯선 이웃의 뒷모습을 회상하며 그 정을 해소하기까지 그 향기가 오랫동안 우리 가슴을 적셔준다.

사람 공포증에 걸린 듯한 그 집을 생각하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자 밖에는 스산하게 부는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고 있었다.

오용균 공군예비역중령. 현재 (사)모두사랑장애인야간학교 교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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