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명문장가 소동파가 삶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 어느 선사를 찾아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진리에 관한 설법을 부탁했다.

그러자 선사는 “무정설법(無情說法, 인간만이 설법하는 것이 아니라 산천초목도 설법한다)”이라는 한마디 대답으로 입을 닫았다.

그대로 되돌아오게 된 소동파는 선사에 대한 서운함으로 발길이 무거웠고, 허탈한 걸음을 옮기는 중 문득 계곡의 폭포 소리를 듣게 됐다. 계곡을 건너며 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던 소동파는 허전한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그 곳에서 물은 무상하게 흐르고 세월도 인생도 모든 존재가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흐르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사성어에 ‘사생동고(死生同苦)’라는 말이 있다. 이는 ‘인간이 죽고 사는 어려운 고생을 함께 함’이라는 뜻으로 어떤 어려운 고생도 같이함을 이르는 말인데 용서와 화해의 뜻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신약성서 마태복음 18장 21~22절에는 예수의 제자 베드로가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 줘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인간과 인간끼리 응어리진 감정의 앙금을 풀기 위해 용서함이 가능합니까? 언제까지 용서해야 합니까?” 라고 질문을 던지는 장면이 나온다.

이에 예수가 대답하기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했다. 이 답변은 수리적인 계산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을 영원히 용서하라는 사랑의 원리를 말하는 것이다.

용서라는 말은 죄지은 자와 죄를 짓지 않은 자 사이에 있다. 죽도록 미워하던 자들이 그 미움과 오해를 풀고 사랑으로 얼싸안음이 용서다. 용서는 일방적으로 이루어지지만 화해와 사랑은 쌍방적이다.

교육부 장관을 지낸 문용린 박사는 “용서하려면 머릿속 깊이 있는 미움을 뿌리째 뽑아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과오는 모르고 상대방의 잘못만 따지려는 논리는 누구에게든지 수용되지 않는다.

"나는 상대방보다 더 많은 과오가 있고 더 많은 죄를 졌다”고 고백해야 함에도 그렇지 않을 때 그 사람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 사상가 루소의 ‘참회록’을 보면 사랑과 화해가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18세기 계몽사상, 낭만주의 문학의 선구자였던 그는 ‘사회계약론’, ‘에밀’ 등의 저서를 통해 프랑스혁명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한 그는 ‘참회록’에서 자연 그대로의 진실한 인간 진면목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부끄러운 사생활을 있는 그대로 고백해 불후의 명작을 만들었다.

"흘러가는 강물에 마음을 헹구고 씻고 빨아 보아도 절고 찌든 땟국은 빠지지 않는다”고 고백한 구상 시인의 순수한 감정처럼 우리 사회 곳곳에 사랑의 꽃이 피었으면 한다.

 

오용균 공군예비역중령. 현재 (사)모두사랑장애인야간학교 교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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