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핵가족화로 자녀를 적게 낳고 저마다의 인생을 즐기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출산하더라도 맞벌이 부부 형편상 보육시설을 이용하거나 양쪽 부모님께 아이를 맡겨 양육을 부탁하는 경우도 많다.

한가위 명절을 이용해 딸과 사위가 귀여운 외손자 두 녀석을 데리고 외가에 왔다. 연년생인데다가 차돌멩이처럼 단단한 외손자들은 첫날부터 북적대기 시작하며 잠잘 생각도 않고 노는 모습이 마냥 귀엽기만 하다.

층간소음이 심각한 요즘 뛰어노는 손자들을 보면 문득 옛날 어르신 말씀에 ‘올 때는 와서 반갑고, 갈 때는 더 반갑다’라는 말이 실감난다. 딸애가 이 소릴 들으면 서운하게 여길 것이고, 사위에게도 미안한 말이 되겠지만 어쨌든 손자들과의 관계는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가운 관계’인 것 같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관계는 비단 손자와 외손자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 ‘손자를 귀여워하면 할아버지 수염이 남아나지 않는다’라는 속담도 있지만, 외손자에 대해서는 ‘방꽁’이라는 다소 냉정한 표현이 있을 뿐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하다.

옛말에 여자가 결혼을 하면 ‘출가외인’이라 했다. 과거에는 그만큼 여자가 친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이 미미하거나 제한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결혼한 딸의 아들인 외손자가 아무리 귀엽다 한들 그 외손자가 외가 사람들을 부양할 리도 없고, 외할아버지나 외할머니의 제사를 모실 수도 없다.

다시 말해 외손자 덕을 보기 어려운 데 반해 방앗공이나 절굿공이는 곡식을 빻는데 요긴하게 쓰이니 외손자의 역할이 방앗공이나 절굿공이 보다 못하다는 의미에서 이런 표현이 생기지 않았나 싶다.

물론 세월이 많이 변해 이 속담이 현실과 맞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도 어느 정도 타당성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속담과 같은 뜻으로 ‘외손자를 봐주느니 파밭을 맨다’는 말도 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손주’라는 단어에 관심을 갖게 됐다. 나이가 드신 분들은 이야기 중에 ‘손자, 손주’라고 말하는 데 과연 그것이 맞는 말인지 의문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내가 갖고 있는 사전을 살펴봐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서점에 가서 사전들을 일일이 조사해 봤더니 ‘손주’란 말이 큰 사전에는 실려 있었지만 웬만큼 수록된 보통 사전에는 실려 있지 않았다.

그것은 그 말이 표준어가 아니고 일부 지방에서 사용되는 방언이기 때문인 것 같다.

국립국어원은 2011년 8월 국민들이 실생활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으나 그동안 표준어로 인정되지 않았던 ‘짜장면’ 등 39개 단어를 표준어로 인정하면서 손자와 손녀를 아울러 이르는 말인 ‘손주’도 이에 포함시켰다.

산비탈에 걸쳐 있는 구름과 깊어가는 가을,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에 새근새근 잠이 들어 있을 손주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손자와 외손자와의 관계를 생각하다 보니 그것에 얽힌 사연과 함께 되살아난 ‘손주’라는 단어가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오용균 공군예비역중령. 현재 (사)모두사랑장애인야간학교 교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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