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야트막한 건물 가장 안쪽, 볕도 피해갈 것 같은 구석진 공간에 온기라고는 작은 난로 두 대가 돌아갈 뿐인 차가운 사무실 안에서 휠체어에 앉아 환하게 웃어주는 ‘모두사랑장애인야간학교’ 주인장을 만났다. 공군 중령 복무 중 뇌종양으로 쓰러져 몸의 절반 이상을 쓸 수 없게 돼버린 오용균 씨. 파르르 떨리는 손을 간신히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사연 많은 ‘야학’선생님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를 생각했다.

“뇌종양으로 쓰러졌을 때가 내 나이 46살이었어요. 곧 진급을 앞둔 전도유망하고 창창한 젊은이였지. 이 상황을 원망했느냐고?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다 보면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고 행복인 걸 알게 되요. 누구를 원망할 겨를도 없어요.”

오용균 모두사랑장애인야간학교 교장, 그가 있게 된 사연이다. 어렵고 긴 수술을 마치고 국군수도통합병원에 입원 중이던 때, 하루가 멀다고 병원으로 실려 오는 후배 병사들을 보며 마음속에 큰 슬픔이 자리 잡았다. 당시 자신도 불구의 몸으로 후배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면담을 이어나갔던 것은 장애에 대한 슬픔을 일찍 이해했기 때문이다.

“전역하고 대전보훈병원 입원 직전에 잠시 일반 병원에 머물렀던 적이 있어요. 그때 많은 장애인을 만났죠. 처음으로 일반 장애인이 겪는 열악한 상황을 보고 정말 많은 것을 깨달았어요. 국가유공자 혜택을 받아 조금이라도 상황이 나은 내가 저분들을 도와야겠구나, 봉사하면서 살아야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남은 삶을 ‘덤’이라 여겼던 그는 수도병원에 있었던 92년부터 뜻을 함께한 지인을 통해 후원금을 모아 ‘한빛 다사랑 나눔’이라는 이름으로 불우이웃, 독거노인, 불우청소년 등을 돕기 시작했다. 그렇게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던 중 자신의 삶을 바꿔놓은 한 장애인을 만났다.

그는 면담과정에서 무엇을 도와주면 좋겠냐는 질문에 “배고프면 물이라도 마시면 되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이니 아프면 치료도 받을 수 있지만, 무식하고 못 배운 것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도움 받을 수가 없다”고 대답한 그에게 큰 충격을 받았다.

“나도 배운 사람이라고 남을 돕기 시작했는데 그 말을 듣고 ‘진짜 문제를 해결해 주지도 못하면서 지금껏 누구를 돕겠다고 허세를 부리며 살아온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속상해서 그날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리고 장애인을 위한 야학을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했지요.”

마음속에 결심이 서자마자 지인들과 꾸준히 해오던 봉사모임을 해산하고 2001년 4월 ‘모두사랑장애인야간학교’를 설립했다. 지역신문에 손바닥보다 작은 기사를 내자마자 학생 22명과 자원봉사 교사 23명이 모여들었다. 그만큼 배움을 향한 갈증이 컸다는 의미다.

교실도 없고 교무행정도 문외한이었던 그는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집까지 찾아온 ‘김영호’ 선생을 잊지 못한다. 덕분에 야간학교의 기초를 닦아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창립멤버나 다름없는 그를 비롯해 최병진, 김윤중 선생은 개교 이후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는 야학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모두사랑장애인야학은 무려 4번의 이사 끝에 지금 이곳에 자리 잡았다. 계약금까지 지급하고 해약 당한 경우도 있었다. ‘장애인이 드나들면 상권이 죽는다’는 주변 상인들의 거센 반대 때문이었다. 겨우 얻은 건물은 부도가 나기도 했다. 갖은 고생 끝에 대전 교육청 소유의 작은 건물에 입주해 올해까지 17년을 꾸려오고 있다.

“교육은 생명입니다. 가난의 고리를 끊는 것은 교육이에요. 장애인도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줘야 해요. 조금 불편하다 뿐이지 사람의 모든 삶은 똑같습니다. 저는 장애를 가지면서 삶의 큰 가치를 알았고, 더 낮은 자세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는 ‘장애가 있는 삶’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지만, 후천적으로 얻은 장애가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준 것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 그는 장애인 복지에 더 힘쓰기 위해 얼마 전 사회복지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의 남은 삶의 목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고 조화롭게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비장애인도 함께 참여하는 ‘통합교육’ 과정을 신설했다. 현재 야학에는 글을 전혀 모르는 비장애인 6명이 함께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새로운 통합교육을 통해 더 커다란 시너지가 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 지난해 5월 모두사랑장애인야간학교 학생들이 비문해 성인을 위한 ‘장애성인 초등과정’ 수업을 듣고 있다.

야학은 교육청에서 임대해 준 현재 건물이 곧 철거를 앞두고 있어 다섯 번째 이사를 준비 중이다. 그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좋은 환경에서, 좋은 교사에게 지도받아야 한다며 꼭 안락한 곳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새로운 변화를 앞둔 채 반달눈을 하고 웃는 그에게서 우리 사회의 깊은 희망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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