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키군 관측병과 소총수

수리산 전투는 서부 전선의 미 제1군단이 1951년 1월 25일부터 재반격 작전을 전개해 한강 남쪽으로 진출하고 있을 때, 미 제25사단 제35연대와 터키 여단이 수원 서북방의 수리산을 공격해 중공군 제50군 예하의 제149사단을 격퇴하고 수리산으로 진출한 공격 전투다.

이 전투에서 미 제35연대와 터키 여단은 미 제999포병대대와 미 제89전차대대의 지원 하에 수리산을 양쪽에서 포위해 중공 제 149사단의 거점을 공격한 끝에 완강히 저항하는 연대 규모의 적을 격퇴하고 수리산을 되찾았다. 수리산 탈환 직후 개시된 중공군의 역습도 물리쳤다.

이 전투로 중공군은 수원 지역으로 물러나 안양 북방으로 후퇴했고 유엔군은 한강 선으로 계속 진격할 수 있었다.

수리산 전투에서 활약한 터키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유엔의 군사원조 결의안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한편, 1950년 10월부터 2만 1,000여 명의 군사를 보내는 등 미국,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병력을 지원하며 우리나라를 도왔다.

터키군은 군우리, 개천지구 전투, 수리산 전투, 김양장리, 금화지구 전투 등 다양한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는데, 특히 수리산 전투와 금양장리 전투에서는 터키군 사상자 대비 10배가 넘는 적을 괴멸시키는 전과를 올려 국군과 유엔군의 전쟁국면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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