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미과학자 이중희 씨의 칼럼과 국가보훈처로 보내온 편지.

호국영웅기장을 받은 재미과학자 이중희 씨가 기장을 받은 감회와 미국에 살고 있는 참전용사까지 잊지 않고 기억해준 대한민국 정부와 국가보훈처에 감사하는 편지를 보내 화제가 되고 있다.

이중희 씨는 지난달 6일자 조선일보 칼럼을 통해 미국에서 예상치도 못했던 호국영웅기장을 전달받고 “뜻밖의 일이라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이제라도 나를 알아주는구나’하는 생각에 쏟아지는 뜨거운 눈물을 참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칼럼에서 “대한민국 국가보훈처장이 로스엔젤레스(LA) 총영사관을 통해 보내온 것이다. 뜯어보니 ‘국가보훈영웅' 증서와 감사 편지, 그리고 목에 거는 큰 훈장이 있었다”며 감동의 순간을 전했다. 국가보훈처가 수여한 것은 ‘호국영웅기장’과 ‘호국영웅기장증’, 그리고 보훈처장 명의의 감사편지였다.

기장을 받은 순간 그는 6·25 당시의 처절했던 기억을 다시 떠올렸다.

“6·25전쟁이 터졌을 때 나는 10대 학생이었다. 징병 의무는 없었지만 나라를 구하겠다고 나이를 두 살이나 속여 올려서 입대했다. 그 후 이른바 '소모품 소위'로 보병 수도사단 최전방에서 매일 죽고 죽이고 뺏고 뺏기는 전투를 거듭했다. 적에게 포위돼 밤새 전투하고 나니 산 전체가 아군과 적군 시체로 뒤덮이기도 했다. 주먹밥을 들고 뛰어오던 병사가 죽어 며칠씩 먹을 것이 없을 때는 풀이고 나무뿌리고 아무것이나 뜯어 먹으며 견뎌냈다. 몇 개월씩 이렇게 전투하다 보면 남은 것이라곤 다 찢어진 피투성이 군복, 적탄에 맞아 구멍 뚫린 철모, 상처투성이인 몸, 몇 발 안 남은 총알, 그리고 가슴에 걸린 수류탄 하나가 전부였다.”

죽을 고비를 넘겼던 순간들도 자세히 적었다. 전쟁의 피내음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그는 전쟁이 끝나고 제대하면서 받은 ‘광목 한 마’와, 국영기업체에서 병역기피자 채용에 대해 비판하다 파면된 사연 등을 전하며 그간의 섭섭함도 함께 토로했다.

이 씨는 글을 마무리하며 “전쟁이 끝나고 63년이나 흘렀지만 지금이라도 나에게 ‘국가보훈영웅'이라는 칭호를 준 한국 정부가 진심으로 고맙다. 오늘의 정부는 옛날과 다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 전쟁에서 나처럼 어린 나이에 자원입대해 고생한 이 가운데 몇 명이나 살아남았을까” 궁금해 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남겼다. 그러면서 “한국군뿐 아니라, 세계 16개국에서 우리나라를 위해 참전한 장병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는 경의를 표해줄 것”을 건의하기도 했다. 그의 건의처럼 국가보훈처는 2010년부터 유엔참전용사 재방한 사업을 추진해 3만여 명의 유엔참전용사와 가족들을 초청해 감사와 위로의 행사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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