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우 삼조는 해병 독립 제5대대 분대장으로 1951년 6월 24일부터 7월 23일까지 김포지구 월암리 전투에 참가했다.

당시 독립 5대대는 육군 제1사단의 작전지시에 따라 월암리에 정찰대 본부를 두고 개성 방면의 철저한 수색을 감행하며, 장애물 설치, 진지 보강 등 방어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수색작전은 긴박한 상황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고, 미 제1군단장과 육군 제1사단장으로부터 “수색정찰의 철저여하에 따라 승패가 좌우된다. 티끌만한 움직임도 놓치지 마라”는 특별지시가 거듭 내려왔다. 1951년 7월 23일 2개 소대로 편성된 정찰대는 개풍군 월암리 지역에서 적 1개 연대병력에 포위돼 전멸의 위기를 맞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김형우 삼조는 결사대에 자원, 5명의 대원을 이끌고 총탄이 빗발치는 포위망을 뚫으며 침착하게 적 앞 10미터 이내까지 접근해 격렬한 총격전을 벌여 본대의 철수를 필사적으로 막아냈다.

총격전 끝에 실탄이 떨어지자 김형우 삼조와 5명의 결사대원은 마지막 수류탄을 던져 15명의 적을 사살하고 과감하게 돌진, 개머리판을 휘두르며 일당백의 육박전을 벌였다.

결사대는 수적으로 절대 열세였던 정찰대의 퇴로를 열어 수많은 전우의 목숨을 구하고 끝내 산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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