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심신을 재충전하려면 배낭 하나 메고 훌쩍 떠나게 된다. 그 목표는 아무래도 좋을 것.

걷는 것은 동물의 본능이고 이동수단이며 모든 행동의 기본이다.

머리 위의 높고 넓은 창공에 마음을 열어두고, 대지를 밟고 자유로운 발걸음으로 우리 땅을 탐색하고 싶다. 그렇게 진정한 자유인으로 사유와 사색, 낭만의 길로 들어설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떠난 남해안 투어. 기대와 설렘을 안고 출발했다. 남해 거제에서 목포까지 20여 일이 소요될 예정이다.

첫 탐사지 거제 총영의 충무공 사당 앞. 한산대첩, 장군의 포효가 들리는 듯하다. 몇 배나 우세한 적과 싸워야 하는 장군의 심정, 풍전등화 조선의 운명, 그의 압박감과 군 진영의 긴장, 백성들의 아우성, 대첩 전야의 깊은 시름. 너무 실감나게 다가오는 밤이다.

한산도 몽돌해변. 한쪽에서는 숲 향이, 한쪽에서는 바다 내음이 코끝을 자극한다. 반짝이는 물빛과 산수화처럼 펼쳐진 섬들, 그리고 그 주위의 옅은 안개가 고요한 저녁을 더욱 고즈넉하게 만든다. 붉게 물든 수평선에 이어 하늘이 검붉게 변해가면서 작은 섬들이 실루엣으로 남아 까만 바둑알처럼 변해간다. 자연의 조화가 극치를 이루는 모습이다.

별주부전의 고장 사천을 지난다. 진주, 진주성과 남강을 내려다보며 심신을 다스린다. 수많은 전쟁과 처참한 역사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남강이다.

여수를 거쳐 쪽빛 파도를 가르며 거문도로 달린다. 다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전남 고흥 팔영산에 닿았다. 여덟 봉우리의 그림자라는 뜻의 이 산에서는 고흥반도 전체에 점점이 박혀있는 선들과 에메랄드 빛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조선반도를 만들다 신이 실수로 떨어뜨린 물감이 이렇게 섬으로 태어났는지, 아니면 신의 걸작인지 구분하기 힘든 모습이다.

이제 숲을 거닌다. 걷고 또 걷고, 3억5,000만 년 전 형성됐다는 숲이다. 왼쪽은 바다, 오른쪽은 구부러진 소나무. 어느 작가가 구부러진 소나무가 더 아름답다 했던가. 그것은 아마도 굴곡진 인생을 닮아서일게다. 내가 걷는 구불구불한 비대칭의 길, 그 곡선도 아름답다.

곡선의 길에서 만나는 풍경이 아름답다. 그렇게 다가오는 그림을 만나며 걸으면 빨리 지치지도 않는다. 직선 도로는 시야가 좁고 빨리 지치고 피곤도 빠르다. 나는 그래서 이 곡선의 미학을 믿는다.

다시 전남 보성에 닿았다. 이곳에서의 잠자리, 새벽 사나운 물소리에서 잠을 깬다. 이순신 장군과 그의 군대가 쏟아내는 승리의 함성처럼, 혹은 왜병들의 비명처럼 들린다. 해남과 진도 사이 울돌목까지 장군의 결기를 느끼는 일정이다.

이제 마지막 여정. 목포 자연사박물관과 삼학도를 거쳐 유달산에 오른다. 압해도, 안좌도, 화원반도가 바로 코앞에 보인다. 목포항. 6·25전쟁이 끝난 후 서울로 학교를 다니기 위해 자주 이용하던 목포항이다. 폭격 맞은 서울의 사람과 건물 모두 처참했던 모습, 무려 62년 전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그러나 오늘, 목포항은 생동감 넘치고 아름답고 평화롭다. 많은 여객선 고속선어선 들이 꿈을 안고 유달산 품은 목포항을 오가고 있다.

짧지 않았던 20여 일 간의 여정을 마무리한다. 이 길, 따뜻했다. 마침 다가온 호국보훈의 달을 앞두고 ‘나라 생각’이 더욱 깊어진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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