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공자와 보훈섬김이. 바늘과 실이자, 보비스의 두 주체이다. 함께 가는 이들의 따뜻한 걸음에서 국가보훈이 추구하는 진심어린 예우가 느껴진다. 보비스 10년을 맞아 ‘강산도 변할 10년’ 간 서로 섬기고 정을 나눠온 국가유공자와 보훈섬김이의 삶의 현장을 찾았다. 나라사랑의 현장에서 온몸을 바쳤고, 지금은 세월의 두께 만큼 무거워진 몸으로 삶을 살아가는 고령의 국가유공자, 그 국가유공자의 삶과 생각의 방향을 살피며 따뜻한 이웃으로, 식구로 살아가는 보훈섬김이. 이들이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이야기를 들어본다.

 

보비스 현장 - 경북 안동, 김하진 참전유공자

 

 

세상 밖으로 … 함께 소통하는 주인의 삶

7월 하순, 절정을 향해가는 여름 더위 한 가운데서 경북 안동을 찾았다. 양반의 고장답게 조용하지만 정갈하게 다듬어진 도시의 인상이 푸근하다.

6·25참전유공자 김하진 어르신. 올해로 여든아홉, 몇 달만 지나면 90을 바라보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정정하고, 다부지고, 표정은 더없이 밝다.

“오셨니껴, 더운데 수고가 많니더.”

경상북도 특유의 사투리가 환한 표정과 잘 어울려 반가움을 배로 느끼게 한다.

함께 찾은 보훈섬김이 전정순씨와는 조금 빨라진 말투로 인사를 나누고, 바로 농담 섞인 ‘그들만의 대화’가 이어진다. 살림살이 상황과 끼니를 묻는 살가운 인사가 천상 친정아버지와 막내딸 정도의 대화다.

정씨는 빠른 손길발길로 벌써 부엌과 냉장고, 방의 상태를 다 훑었다.

“어르신 너무 깨끗해서 손 댈 곳도 없네요. 식사는 잘 하셨지요? 방금 만든 주스 시원하게 한 잔 하세요.”

연신 주스를 따라주는 정씨의 손길과 함께 김하진 어른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보훈섬김이 전정순 씨에 대한 칭찬, 따뜻한 손길로 달라진 생활, 보훈청에 대한 고마움으로 이야기는 계속된다.

“20년 전 아내를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 혼자 생활을 하고 있지요. 이렇게 찾아와 일을 보아주는 고마운 손길이 있어 큰 도움이 됩니다. 혼자 다 꾸려간다고 생각하면, 어휴.”

김하진 어르신은 자신의 생활에 활력을 주는 힘이 바로 전정순 씨라고 얘기한다. 집안의 소소한 것들을 잘 챙겨주고, 적적하지 않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전해주는 전 씨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 셈이다. 이 창구를 통해 그는 더 커다랗게 이웃을 만났다.

독거에 따른 외로움을 떨쳐버리자, 새로운 삶과 이웃을 돕고 함께 살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 2015년부터 경북북부보훈지청의 ‘생생실버스쿨’에 참여하면서 장구연주를 배우기 시작했다.

내친 김에 보훈지청의 지원으로 지난 해 11월에는 국가유공자 사회공헌 프로젝트 ‘보훈 젠틀맨’에도 참여해 실력을 뽐냈다. 11월 18일 안동재활요양원에서 입소환자를 위해 열리는 ‘보훈젠틀맨 재능기부 연주회’에서 풍물연주는 물론 독창 무대를 맡기도 했다. 어르신의 ‘찔레꽃’ 독창이 시작되자 관객들이 무대 앞으로 나와 덩실덩실 춤을 추는 장면이 연출됐다. 그에게는 연주를 배우기 시작한 이래 최고의 순간이었다.

“남들 앞에서 공연을 한 게 처음인데 정말 신나고 감동적인 경험이었지요. 내 재능이 부족해도 어려운 분들을 위해 나눌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를 춤추게 한 것은, 그를 세상 밖으로 나와 주체가 되게 한 것은 보비스와 보비스 사람들이다.

이제 국가유공자 김하진 어르신과 보훈섬김이 전정순 씨의 동행은 ‘보비스 서비스’를 넘어선 아름다운 인생의 동행이 됐다. 이들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고 힘을 얻고, 인생의 의미를 함께 깨달아가는 ‘행복한 벗’으로 거듭났다. 보비스는 이들을 단단히 묶어주는 ‘따뜻한 고리’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인터뷰 - 전북 익산, 주성임 보훈섬김이

 

 

행복한 인생 만드는 행복한 섬김이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주어진 일에 즐겁고 행복한 태도로 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다른 곳에서 이만큼의 행복을 누릴 수 없을 것 같아 앞으로도 계속 더 성심껏 섬김이 활동을 할 생각이라는 ‘행복한 섬김이’가 여기 있다. 전북 익산의 보훈섬김이, 주성임 씨. 저만치서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그는 이미 오전에 어르신 한 분을 뵙고 오는 길이다.

“제가 어르신들을 일방적으로 도와드리는 것은 분명히 아닙니다. 그분들은 제게 삶을 살아가게 하는 의지와 목적을 주신다는 점에서 ‘함께하는’ 동행이죠. 저를 필요로 하고 고맙다고 해주시는 어르신들이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구나’를 알게 해줍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어르신이 원하는 걸 해드리고 좋아하시는 걸 볼 때가 제일 즐거워요.”

사실 그는 국가유공자나 보훈가족과 특별한 인연은 없다. 다만 평소 꾸준히 해오던 봉사활동을 계기로 사회복지사의 길로 들어섰고, 봉사활동으로 익숙해진 일을 활용할 방법을 찾다가 ‘보훈섬김이’를 알게 됐다. 생계형으로 시작한 섬김이 일은 올해까지 햇수로만 10년째가 됐다. 그의 손을 거친 보훈가족을 셀 수도 없을 정도다. 이제 그에게 ‘보훈섬김이’는 사명이고 책임이다.

항상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어르신과 감정이 상할 때도 있었고, 체력적으로 힘에 부칠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그의 마음을 다잡게 한 것은 역시 그의 돌봄을 받는 보훈가족이었다.

방문하는 집이 좀 멀다 싶으면 여행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가는 길에 한적한 들판이 보이면 잠시 멈춰 서서 마음을 다스리기도 한다는 그는 평소 시낭송이나 운동, 음악감상을 하면서 스스로를 달랜다. 하지만 가장 힘을 주는 것은 어르신의 행복해 하는 모습이다. 그는 그 힘으로 다음날 아침 다시 어르신 댁으로 출발한다.

그는 하나같이 다른 성격, 다른 태도를 가진 어르신들을 똑같이 만족시켜드리기 위해 항상 메모를 한다. 그가 들고 온 두꺼운 수첩 속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특이사항, 주의점, 민원 등이 적혀있었다.

“직접 어르신 댁에 찾아가보면 손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뭐든 도와드리고 싶어 아주 사소한 것까지 신경쓰다보면 끝이 없기 때문에 한정된 시간이 아쉬울 때가 많죠. 여건만 충족 된다면 자주자주 찾아 손발이 돼 드리고 싶어요.”

그의 발걸음에서 보비스 10년의 성과가 중첩돼 보이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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