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에 지친 사람들의 쉴 자리 돼 주던 포근한 여름밤은 이제 가을의 길목에서 알맞게 물러나야 할 때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래서 춤은 순리대로 계절을 불러오려는 의식이다. 혹여 더운 계절이 더 머무를까, 추운 계절이 당겨 돌아올까 우리네 이웃의 안위를 걱정하며 모든 것을 자연의 질서대로 이루어지게 하려는 염원이다. 머리칼을 스치는 습한 바람 속에 한 줄기 서늘한 공기가 섞인 것이 느껴진다면 춤의 세계로 빠져들기 딱 좋은 순간이다.

 

련 : 다시 피는 꽃 (정동극장 서울, 4.6~10.29)

 

‘련: 다시 피는 꽃’은 우리 전통 한국무용을 기반으로 이야기가 있는 드라마 구성을 통해 극적 흐름을 갖추고 ‘춤’으로 풀어가는 극이다. 공연은 삼국시대의 ‘도미부인 설화’와 제주 설화 ‘이공본풀이’ 두 가지 전통설화를 조합해 창작됐다.

도미부인 설화는 백제의 왕이 미천한 신분의 ‘도미’라는 이의 아내에 정념을 품고 간계를 부리나 도미부인의 슬기로 위기를 극복하고 부부의 사랑을 확인하는 이야기다. 이공본풀이는 종살이를 하며 주인에게 온갖 시련을 당하다 죽은 원강암이를 남편 사라도령과 아들 할락궁이가 서천 꽃밭의 되살이 꽃으로 소생시키는 이야기다.

이 공연은 ‘극복’과 ‘소생’이라는 한국 전통의 정신과 사상을 이야기에 담고 도미부인과 원강암이의 의연하고 결연한 태도를 주인공 ‘서련’에 투영했다. 가상의 조선 왕실을 배경으로 서련이 자신의 뜻을 지켜나가는 여인의 모습을 찬란하고 화려한 춤사위로 피워낸다.

국중 연희를 바탕으로 재창작한 한국 무용의 구성은 우리 춤의 화려함과 깊이를 선사하고 제례의식 때 공연된 의식무용인 ‘일무’, 나라의 태평성대와 왕실의 번영을 기원하는 춤인 ‘태평무’ 등이 한국 전통춤의 진수를 보여준다.

 

백조의 호수 (의정부예술의전당 대극장, 9.15~16)

 

마법에 빠져 낮에는 백조, 밤에는 다시 사람이 되는 공주와 그에게 매혹된 왕자. 공주와 닮은 딸을 앞세워 왕자의 사랑을 방해 하고 마법의 힘을 유지하려는 악마. 이 모든 스토리를 가능하게 하는 차이코프스키의 아름다운 음악과 마리우스 프티파-레프 이바노프 콤비의 위대한 안무가 있다.

‘백조의 호수’에는 주역과 군무의 활약 외에도 솔리스트들이 각자의 개성과 기량을 보여주는 풍성한 춤들이 많이 배치돼 있다.

1막에서는 왕궁 귀족들이 추는 ‘왈츠’, 지그프리드 왕자와 친구들이 추는 ‘3인무(파 드 트루와 Pas de Trois)’, 백조 군무 사이에 등장하는 ‘네 마리 작은 백조의 춤’과 ‘네 마리 큰 백조의 춤’이 볼 만하다.

화려한 춤이 쏟아지는 장면은 2막의 왕궁 무도회. 지그프리드 왕자에게 청혼하러 온 각 나라 공주들이 스페인 춤, 헝가리 춤, 폴란드 춤, 나폴리탄 춤을 추며 세련된 발레로 녹아낸 민속춤의 특징을 소개한다. 또한 왕자의 친구로 나와 극 중에서 감초와 같은 역할을 하는 궁중 광대 ‘제스터의 춤’도 남성 솔리스트의 테크닉을 볼 수 있다.

 

드고 나는 숨 (대전시립연정국악원 큰마당, 9.14)

 

여름과 자리를 맞바꾼 가을의 초입, 대전시립연정국악원 큰마당에서 전통 춤판이 벌어진다.

국악인 남상일 씨의 진행과 KBS국악한마당 전속음악단체인 민속악회 ‘수리’와 첼리스트 김현실의 연주에 대전시립무용단이 여섯 종류의 전통춤을 준비해 가을의 문턱에서 관객을 기다린다.

공연은 다섯 개의 북으로 신명나는 가락을 뽑아내는 ‘오고무’다. 이어 전통농악의 설장고춤에서 가락과 춤사위를 이끌어낸 ‘장고춤’이 펼쳐진다. 장고춤은 농악이 지닌 흥과 신명뿐만 아니라 다양한 발동작과 유연한 손짓, 그리고 장고치는 가락이 섬세하고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춤의 정수라 할 만큼 품위와 격조가 높은 춤.

세 번째 마당은 무당춤의 연희적 요소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창작춤인 ‘대감놀이’에 이어 공연은 농민들이 일을 하며 치던 농악의 모북에서 유래한 진도북춤과 인생의 고난과 역경을 풀어내는 살풀이춤으로 가며 점점 무르익는다.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부채춤. 화사하게 피어나는 무궁화를 상징하는 형상을 만든 작품으로 겨레의 반만년 역사가 춤으로 피었다 지는 모습을 통해 민족 대화합과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막을 내린다.

 

저작권자 © 나라사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