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덕수궁.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야외에서 빛과 소리, 미술 작품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대한제국 선포의 역사적 현장인 덕수궁을 배경으로 ‘덕수궁 야외프로젝트 : 빛·소리·풍경’전을 열고 있다.

 

▲ 강애란, <대한제국의 빛나는 날들>, 혼합매체, 가변크기, 2017

오는 26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는 덕수궁 내 중화전 앞 행각, 함녕전 등 7개의 장소에 등 한국 작가 9명의 작품이 공개한다. 지난 2012년 덕수궁에서 개최한 ‘덕수궁 프로젝트’의 계보를 잇는 궁궐 프로젝트로 참여 작가들이 덕수궁 내 공간 곳곳을 탐구하며 역사와 현재를 연결하는 신작을 구상, 제작, 설치하는 장소 특정적 현대미술 전시이다.

특히 이번 전시는 올해로 120주년이 되는 대한제국 선포(1897년)를 기념하며 대한제국 시기를 모티브로 덕수궁이라는 역사적 공간에 조형적인 접근을 시도한 프로젝트라는 점이 특징이다.

덕수궁은 임진왜란 직후 선조가 머물며 왕궁으로서의 역사가 시작된 곳으로,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조선이 자주 독립국임을 대외에 밝히고 강한 주권 의지를 표명한 장소. 참여 작가들은 수 개월간 덕수궁을 출입하며 이곳에 내재되어 있는 역사적 배경과 독특한 공간의 특성을 받아들여 본인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작품을 탄생시켰다.

전시 동선은 관람객들의 입장 동선에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덕수궁 대한문으로 입장해 처음 만나게 되는 중화전 앞 행각에서는 장민승의 공동작품 ‘온돌야화(溫突夜話)’가 소개된다. 장민승은 더 이상 실존하지 않아 기록물로만 확인할 수 있는 한국 근대시기의 건물 및 생활상들을 재발굴해 아날로그 슬라이드 필름으로 풀어냈다. 여기에 양방언의 곡을 더해 시각과 청각을 감각적으로 두드리는 풍경을 선사한다.

 

▲ 김진희, <딥 다운 - 부용>, 전자제품 부품 설치, 2017

석조전 본관과 별관을 잇는 계단과 복도에는 김진희, 정연두의 작품이 설치된다. 김진희는 전자제품들을 분해하고 다시 조립, 재가공해 내부에 숨어있던 색, 기능 등을 바깥으로 도출시킨다.

정연두의 ‘프리즘 효과’는 대한제국 시기의 고종황제와 덕혜옹주를 바라보는 시각을 네 개의 시선으로 분류해 사진으로 구현한 설치 작품이다. 네 면이 막힌 대형 가벽 위에 두 사람을 바라본 사적인 시선, 치욕의 시선, 공적인 시선, 외국 열강이 바라본 타인의 시선을 담은 사진이 설치된다.

 

▲ 정연두, <프리즘 효과>, 사진으로 구현한 설치, 2017

석조전을 지나 걷다보면 덕수궁에서 유일하게 단청이 칠해지지 않은 이층 건물인 석어당의 대청마루에서 권민호의 대형 드로잉 ‘시작점의 풍경’을 만나게 된다.

한때 고종황제의 알현실로 사용되었던 덕홍전에는 강애란, 임수식의 작품이 설치된다. 강애란은 조선왕조실록, 고종황제가 즐겨 읽던 서적 및 외교문서 그리고 황실 문화, 예술 등에 대한 자료를 재현하여 황제의 서고 ‘대한제국의 빛나는 날들’을 완성했다. 임수식은 덕홍전에 책가도가 있었다면 어떤 책들이 그려져 있었을까 라는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 병풍 형식의 책가도 ‘책가도389’를 제작했다.

고종황제의 침전이며 승하하신 장소이기도 한 함녕전에는 이진준의 ‘어디에나 있는 하지만 어디에도 없는 - 불면증&불꽃놀이’가 프로젝션된다.

 

▲ 이진준, <‘어디에나 있는 하지만 어디에도 없는’ 시리즈 - 불면증&불꽃놀이>, 6채널 영상설치, 가변크기, 2017

전시의 마지막은 그동안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함녕전 앞 행각에 오재우의 VR작품 ‘몽중몽(夢中夢)’이 소개된다. 작가는 덕수궁이 고종황제가 원대한 꿈을 품고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희망찬 미래를 설계하고자 했던 시발점이라 보았다.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은 유구한 역사의 현장 속에서 자신만의 빛과 소리를 찾아가며 그려내는 풍경을 조우하고 그 특별한 시공간을 함께할 수 있다.

전시와 함께 가을밤을 수놓을 각종 행사도 풍성하게 이어진다. 낮보다 밤의 전시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문의 02-2022-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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