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한 달에 한번 머리 깎고 다듬는 즐거움으로 산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얼굴은 점점 더 검어지고 머리칼은 가늘어지면서 빠지더니 이윽고 정수리를 중심으로 하얗게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젊어서부터 머리나 얼굴 다듬기를 게을리 했다. 늙어서는 그 게으름이 더 심해졌다. 머리칼이 자라는 대로 놔뒀다가 귀를 덮을 지경이 되어서야 이발관을 찾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인생 후반기에 들어선 요즘 월 1회 머리 커트를 한다는 자발적 규칙을 만들어 조상의 기일처럼 지키고 있다. 머리칼만 빨리 자라준다면 그 회수를 월 2회로 늘리고 싶기까지 하다.

이런 변화는 우연찮게도 마음에 드는 업소 한 곳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중년의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하는 곳으로 커트요금은 대중업소의 3분의 1 수준이다. 그러나 그곳을 자주 찾는 이유는 요금 때문만은 아니다. 종사자들이 뛰어난 기량으로 한결 세련된 머리모양을 만들어 줄뿐만 아니라 매너와 업소운영 또한 높은 품격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약일자와 순번이 적힌 티켓을 받고 나면 바로 의자에 앉히고 의자의 높낮이를 조절한다. 그리고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아버님 어떻게 깎아드릴까요 하고 묻는다. 따뜻한 음성과 겸손한 태도에서 우선 프로에 대한 신뢰와 편안함을 느낀다. 그런 프로에게 아마 중의 아마가 무슨 주문을 덧붙일 것인가. 해주시는 대로 맡기겠다는 것이 내 대답이다.

거울 속에는 내 얼굴과 머리가 둥그렇게 떠 있다. 부석부석한 얼굴은 점점 더 검어지고 있고 가늘고 옅어지는 머리칼 또한 하얗다 못해 누르스름한 색깔로 짙어지고 있다. 이제 커터를 손에든 거울 속의 봉사자는 내게서 두 발짝 물러났다 한 발짝 다가선다. 내 얼굴과 머리를 유심히 관찰하는 순간이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린다. 내 모습이 젊은이에 의해 그처럼 관찰당하는 것은 드문 일 중의 드문 일이다.

물론 요즈음 나의 일상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내 곁을 스친다. 그러나 그 중 어느 누구도 나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다.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무관심 정도라면 그나마 다행 아닌가.

낮고 경쾌한 커터 작동 음과 가위소리가 귓전을 스친다. 눈을 감으니 아득한 옛날 일들이 주마등처럼 깜빡인다. 과연 그동안의 내 삶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아직 살아 있는 띠 동갑들과 비교해 평균수준은 될까?

그러나 지금은 날이 갈수록 얼굴은 검어지고 백발은 짙어지며 원기는 쇠잔해 가고 있다. 젊은 시절의 절망이 지금 다시 나를 덮친다면 재기의 가능성은 있을까. 그것이 두려워 눈은 감고 입은 닫고 귀는 막고 발걸음을 낮아진다.

그런데 의외의 곳에서 품격 높은 전문가들을 만났다. 20분 남짓한 시간이지만 그들은 내 얼굴과 조화를 이루는 머리를 만들고 눈썹도 다듬어 준다. 그들이 내 머리칼을 몽땅 깎아 머리위에 민둥산을 만들자고 해도 따를 것이고 여러 색깔의 염색으로 닭 벼슬처럼 화려한 장식을 올려놓자고 해도 그대로 수용할 생각이다.

왜 그런 전문가들을 좀 더 일찍 만나지 못했을까. 그랬더라면 나는 얼굴과 머리에 좀 더 신경을 쏟았을 것이다. 그리고 내 모습도 지금보다 훨씬 더 젊고 건강해 보였으리라. 새로운 희망 하나를 갖고 오늘 나는 집을 나선다.

 

박진 월남전참전유공자, 주요 통신사 기자 등으로 활동, 현재는 일산에서 회고록 등을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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