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평창 동계올림픽을 빛낸 평창 문화 공연단이 리허설 공연을 마치고 성공을 위한 힘찬 다짐을 하고 있다.

 

 

겨울이면 아름다운 흰 눈이 앙상한 겨울 산천을 두툼히 덮어 세계 어느 도시에 견주어도 지지 않을 설경을 선사하는 평창에 세계가 모였다. 거리마다 전국의 정겨운 사투리와 세계의 언어로 꽉 찼다. 모국을 상징하는 알록달록한 색의 유니폼과 방한복을 갖춰 입고 세계는 그렇게 평창으로 모였다. 평창의 뜨거운 열기만큼 평창 거리 곳곳을 따스하게 덥히고 있는 자원 봉사자 이욱환 씨(62)를 만났다.

상이군경회 평창군지회장 겸 평창문화원장으로 이번 올림픽에 ‘자원 봉사자’로 참여한 그는 올림픽이 막바지에 접어든 그때까지도 지친 기색 하나 없이 그저 사람 좋은 미소로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그가 안내한 곳은 올림픽 스타디움 근처 눈꽃축제장이었다. 온통 하얀 눈밭과 눈 조각품으로 가득한 그 곳에서 준비되고 있던 것은 ‘황병산 사냥놀이’라는 낯선 공연이었다. 추운 날씨로 단원들은 얼굴이 붉게 물들고 입에서는 하얀 입김을 쏟아내면서도 한 번뿐일지도 모르는 올림픽에 기여한다는 마음 때문인지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강원도의 전통 수렵문화를 공연으로 만든 것으로 농악대를 선두로 시작된 공연은 그야말로 눈밭 위의 뜨거운 열기였다.

흥을 이기지 못한 몇몇 관중은 추임새를 넣기도 하고 아예 놀이패와 섞여 춤을 추기도 했다. 외국인 관람객 역시 눈을 떼지 못하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평창 지역 문화가 올림픽을 타고 세계로 알려지는 순간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내 고향의 행사이기도 국가의 행사이기도 하지요. 제가 나라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평창과 대한민국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전 세계에 알려지는 것이 아주 뿌듯합니다.”

그는 전직 경찰이다. 평창군민을 보살피며 지역 질서 안정에 기여하던 그는 지난 1998년 대관령 폭설 당시 시민들을 구조하기 위해 고립된 고속도로에 진입해 3일간 구조 작업에 매달리다 급성 심근경색이 왔다. 3차례의 전신마취와 왼쪽 다리의 동맥을 끊어내는 대수술을 통해 간신히 목숨을 건졌으나, 심장의 1/3이 괴사됐고 8년간의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병원에 누워 있는 동안 ‘삶’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어요. 젊은 나이였던지라 괴롭기도 했지만, 죽다 살아났으니 남은 인생 봉사하면서 살기로 마음먹었죠.”

생업을 포기한 후 그는 평소 관심 있었던 향토문화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관련 분야로 자연스럽게 진출하게 된 그는 지금 강원도 민속 문화 분야의 ‘통’으로 통한다.

그는 평창문화원장으로써 준비하는 전통공연 등에 상이군경 등 보훈가족이 참여할 수 있게 도왔다. 그렇게 준비한 평창군의 고유한 문화들은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에 큰 힘이 됐다. 올림픽 기간 내내 거리 공연, 축제장 공연을 빼곡히 준비해 관광객과 선수단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줬음은 말할 것도 없다.

“역사와 문화가 있는 나라는 쉽게 무너지지 않지요. 우리 국가유공자들이 과거 총칼로 대한민국을 지켰듯 전통문화를 지키고 계승하며 또 한 번 우리나라를 지켜내고 싶습니다.”

그는 3월 9일 개막하는 패럴림픽에도 관심이 이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이 아름다운 경쟁을 위해 노력한 패럴림픽 출전 선수들에게도 아낌없이 사랑을 쏟아주기를 당부하며 자원 봉사자들 역시 끝까지 평창에 남아 방문객의 편의와 볼거리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경기장 밖에서 올림픽 출전 선수들의 경기만큼이나 쉴 틈 없이 이어지는 공연들의 출연자를 격려하고 돌보기 위해 평창의 매서운 공기를 헤치고 일어서는 그의 모습에서 부드러운 힘이 느껴졌다. 대한민국과 전 세계의 겨울 축제 평창 동계올림픽은 이렇게 많은 작은 빛이 모여 ‘큰 성공’으로 이어진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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