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명균 보훈섬김이가 김상배 어르신댁에서 활동을 마치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완연한 봄기운에 사람도 자연도 생기와 활력을 가득 머금었다. 따뜻한 햇살 눈부신 날에 들어선 김상배 어르신(86) 댁은 깨끗하고 단정하게 정리정돈 돼 들어서는 이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낯선 이의 방문이 어색했던 어르신은 보훈섬김이 지원을 한사코 거절하다 1년 전부터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어르신의 마음을 헤아리고 묵묵히 청소와 간단한 요리,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전해 드리는 노명균 섬김이(64) 덕분이었다. 요즘 어르신은 섬김이 방문 날을 기다리고 있다.

“내가 귀가 많이 어둡고 눈도 잘 안 보이는데 노 여사가 내 눈도 되 주고 귀도 돼 줘요. 지난번 백내장 재수술을 했을 때도 한 달이 넘게 내 병수발을 들어줬지요. 꼬박꼬박 안약도 넣어주고 내가 좋아하는 흰 죽도 귀찮아하지 않고 올 때마다 만들어 줬습니다.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지요.”

첫 번째 받은 수술이 잘못 돼 재수술을 받았다는 어르신은 눈에 넣어야 하는 약만도 5개. 안약을 시간 맞춰 제대로 넣는 것이 어르신께 쉬운 일은 아니었다. 노명균 섬김이가 없었더라면 또 다른 수술 후유증을 겪어야 했을지 모른다.

“수술 직후에 와보니 집안이 엉망이었어요. 잘 보이지 않으니까 청소도 식사도 마음대로 되지 않아 힘들어하고 계셨죠. 그래서 따로 시간을 내서 일주일에 네 번까지도 들렀어요. 상황을 잘 아는데 와보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그는 대상자 집을 찾아 한 번만 살펴보면 무엇을 채워드려야 할지 아는 베테랑 섬김이다. 주변 지인의 추천을 받아 시작한 것이 올해로 꼭 10년째, 곧 정년을 맞는 나이가 됐다. 어르신들 끼니 걱정은 하지 않게 해드리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한 섬김이 활동은 이제 음식이면 음식, 청소면 청소, 못하는 것이 없는 어르신들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살뜰한 살림꾼으로 자리 잡았다.

“힘들고 서운한 사건들도 물론 많지요. 그럴 때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가 더 잘 모셔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제는 섬김이 일이 익숙해져서 체력적으로 힘들거나 하지도 않습니다. 어르신들 챙기고 쫓아다니느라 아플 시간도 없고요.”

그는 지금도 대중교통을 이용해 어르신 댁을 방문하고 있다. 일일이 차를 바꿔 타고 걸어 다니는 어려움만 생각했다면 오랫동안 하지 못했을 일이다. 2년 전쯤은 이사로 관할지역을 변경해야 하는 일도 있었지만, 어르신들을 돌보는 것이 마치 ‘사명’처럼 느껴져서 그만둘 수 없었다고 한다.

“수원에서 성남으로 지역을 옮겼을 때 제가 모시던 한 애국지사 부부어르신이 계속 남아주면 안 되냐고 하시더라고요. 속으로 많이 울었어요. 어르신들이 제게 의지하는 만큼 저도 똑같이 기대고 있었던 거죠. 할 수 있을 때까지는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을 그때 했어요.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국가유공자’께 베푸는 것만큼 보람된 일이 어디 있나요?”

곧 정년이 돌아오는 그는 올해가 섬김이로 일할 수 있는 마지막 해다. 그래서 요즘 그는 지난 10년의 섬김이 생활과 그동안 만났던 어르신들 생각을 차분히 정리해 보고 있다. 섬김이로 살았던 10년이 자신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생각하면서 어르신들을 만날 수 없는 일상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텅 비어가는 듯하다.

“보훈섬김이들은 만능 해결사인 것 같아요. 남들이 알지 못하는 무수히 많은 일들을 겪고 받아들이면서 정신적으로도 성숙되는 것 같고요. 그 뒤에는 굴곡진 세월을 살아오셨던 어르신들이 계시죠. 어르신들 덕에 제 삶도 많이 여유롭고 지혜로워졌다고 생각해요.”

김상배 어르신은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조용한 목소리로 “저 사람이 참 착한 사람이에요”라고 말을 꺼냈다. 서로를 위하고 챙기는 마음이 빛나는 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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