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열의 위패를 모시고 독립운동 기록물을 보관한 단충사와 독립운동가 52위의 봉분이 자리한 국립신암선열공원 전경.

쏟아지는 한낮의 태양이 뜨거운 계절을 예고하는 오후, 이제 막 ‘국립묘지’ 대열에 합류한 대구 국립신암선열공원을 찾았다.

선열공원과 이웃하고 있는 초등학교 담장에는 안장된 애국지사의 성함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새기고 태극기와 무궁화 등으로 선열의 애국심을 나타낸 벽화가 그려져 추모객의 발걸음을 지루하지 않게 한다.

새로 단장한 입구를 들어서면 언덕 곳곳에 자리 잡은 갖가지 수목이 저마다의 잎을 내어 산책하기 좋은 그늘을 만들어 두고 참배객을 맞는다. 소박한 언덕은 5개 묘역으로 나뉘어져 52위의 봉분과 비석이 후손들을 굽어보듯 자리 잡았다.

지난 5월 1일 ‘국립묘지’로 정식 개원한 신암선열공원은 국내 최대의 독립운동가 집단묘역이다. 3·1만세운동, 광복군·의병활동, 일본·만주 독립운동, 애국부인회 활동 등 국내외 항일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52위가 안치돼 있다. 52위는 모두 대구·경북 출신이다.

묘역으로 들어서기 전 선열들의 위패를 모신 단충사가 먼저 방문객을 맞는다. 단충사에는 위패뿐만 아니라 선열들의 독립운동에 관한 자료와 대구·경북 지역에서 일어난 3·1운동과 학생운동, 신간회 활동 등에 관한 기록이 보관돼 있다.

단충사를 왼쪽으로 돌아 묘역으로 들어서 천천히 걷다 보면 일제강점기 의병활동을 펼친 임용상 지사의 묘비가 있다. 표지석에는 1905년 11월 을사조약 체결 후 경북 영덕에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 주둔지역을 습격하고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는 공적이 적혀 있다.

대구 출신으로 대구지역 3·1운동을 주도한 김태련 지사와 아버지가 주도한 3·1운동에 참가해 앞장섰다가 체포돼 가혹한 고문 끝에 순국한 김용해 지사 두 부자(父子)도 앞뒤로 자리했다. 아버지 김 지사의 묘소가 아들을 내려다보는 자리에 위치해 아들을 먼저 보낸 아버지의 애끓는 심정이 느껴지는 듯했다. 대한애국부인회를 조직하고 2대 부회장까지 역임한 이혜경 의사도 3묘역 제일 높은 곳에 잠들어 있다.

산책하듯 걸으며 선열의 묘역에서 의미를 되새기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선열들이 조국독립을 위해 보낸 치열한 시간과 그 사명감만큼은 더없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한 번뿐인 목숨과 자신의 삶을 어두웠던 시절 오롯이 독립에 바친 애국선열들이 햇빛이 잘 드는 밝은 곳에 영면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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