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주 한용석·설정임 어르신 댁에서 따뜻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신순남 보훈섬김이(오른쪽).

전주 덕진구 진북동 일대는 해발 109미터의 서산을 품에 안고 있다. 앞뒤로 야트막한 언덕이 언제나 안온하게 삶을 보호하는 곳이다. 그래서 지금도 이 마을은 길을 나서면 언제나 모든 곳이 정원이자 텃밭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조금씩 날씨가 더위로 향하는 주말, 조용한 마을 어귀에 자리 잡은 참전유공자 한용석(93) 어르신 댁에 전북동부보훈지청 신순남 섬김이(59)가 들어섰다. 오늘도 한용석 어르신은 아내 설정임 어르신(87)과 함께 따뜻한 표정으로 현관문을 열어준다. 언제나처럼 깨끗하게 정돈된 집이다.

“우리 전주 딸이 왔네. 서울 딸은 지난번에 다녀갔는데, 이렇게 자주 찾아오는 건 역시 우리 전주 딸이야.”

몸이 조금 불편하시다. 워낙 연세가 많으셔서 근육의 힘이 떨어지셨단다. 두 분 모두 지팡이에 의존하지 않고는 짧은 거리도 이동이 원만치 않으시다. 그래도 올 때마다 최대한 가깝게 맞아주고, 집을 나설 때는 제발 나오시지 말라고 해도 현관 턱 계단을 내려와 대문까지 배웅을 하며 손을 흔드신다. 마을 어귀 돌아설 때까지 서 계신 건 물론이다.

“두 분 모두 정말 너무나 밝게 살고 계시죠. 젊은 부부들과 비교해도 좋을 만큼 이렇게 집을 깨끗이 정리하시는 모습은 참 신기할 정도예요. 두 어르신을 뵙고 오는 날이면 저도 큰 위로가 된답니다. 부모님을 뵙고 돌아서는 딸처럼.”

방문 때마다 한번씩 청소를 해 드리지만 ‘청소한 티’가 나지 않아 다소 서운할 정도란다. 그래서 신 섬김이는 자신의 역할을 다르게 잡고 있다. 청소, 반찬 서비스, 나들이나 병원 동행 등이 아니라, 더 깊은 만남을 통한 ‘가족’이 되기로 했다.

“오늘 이 어르신들을 포함해서 이젠 많은 분들이, 연세 드시면서 가족 같은 대화상대를 찾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더군다나 이 지역은 전주도심에 가깝다 보니 경제적으로도 다소 여유가 있고, 당장 급하게 긴급 구제가 필요한 가정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고요.”

그래서 신 섬김이는 한 분 한 분 찾아뵐 때마다 눈높이를 맞추고 깊은 대화 나누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함께 일하는 후배 섬김이들에게도 이 이야기를 강조한다. 가끔씩 유공자 어르신들과 조금씩 오해가 생기는 경우도 알고 보면 모두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았다. 유공자 어르신들은 도움과 지원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가깝게 다가와 주고 함께 삶의 동행이 되기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24년 미용사 생활을 접고 자원봉사에 온힘을 다하던 중, 보훈섬김이가 된지 벌써 10년. 천직으로 알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지 않았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그의 고백이다.

“제가 원래 어르신들을 좋아했어요. 한시도 쉬지 않고 얘기하는 데는 자신이 있을 정도로 어르신들과는 결이 잘 맞았던 셈이지요. 이렇게 섬김이 일에 들어서서는 한 번도 다른 길을 생각하지 않고 걸어왔습니다. 내게는 지금부터가 보너스 같은 인생인데, 이분들을 섬기며 도우며 살자, 그렇게 다짐을 했죠.”

그래서였을까. 그의 표정조차도 연세 많으신 어르신의 따뜻함과 여유를 닮아가고 있는 듯했다.

“한 번은 혼자 사시는 어르신 댁에 방문할 때마다 이상한 냄새가 계속 나는 걸 발견한 적이 있어요. 몇 번 참다 여쭤 봤더니, 제가 올 때 혹시 안 좋은 냄새가 날까봐 시너로 온 집안을 소독하고 있다고 얘기하시더라구요. 아찔했죠. 혹시 불씨라도 튀었으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거였잖아요.”

그렇게 사람이 반가웠고, 무엇이라도 더 좋은 것으로 나누고 싶었다는 얘기였다. 그는 그 일이 외롭고 순진하고 따뜻한 이들의 옆에 자신이 있음을 특별히 감사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그가 하는 새로운 일의 한 가지. 36명의 지청 소속 섬김이들의 맏언니 역할이다. 항상 일을 긍정적으로 대하도록 이야기하고 함께 팀웍을 이루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사람이다 보니 가질 수 있는 불만을 조정하거나 섬김이들 간의 관계를 잘 만드는 일이 그의 몫이다. 항상 함께 대화하고 회의하고, 그러다 가끔씩 갖는 단합대회는 지친 심신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단다. 후배들이 이 ‘천직’을 느끼며 함께 일하도록 만들어 주는 일이 또 하나의 소명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그는 국가유공자분들의 연세들이 많아지면서 한 분씩 돌아가실 때마다, 하나씩의 하늘이 무너진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신순남 섬김이는 이분들의 남은 삶을 더욱 행복하고, 이분들의 하늘을 더욱 맑고 밝게 만들어 주는 일이라면 우리 모두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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