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덕 선생은 서울 출신으로 경술국치 이후 중국 북경으로 건너가 새로운 사상을 익혔고, 1916년 중국 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한 후 단기서 군의 제2사단에서 복무했다. 중국에서 1919년 3·1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선생은 중국 베이징을 중심으로 대한독립청년단 단원 모집에 힘썼다.

1921년 4월 의열단에 참여한 선생은 김원봉 단장과 함께 1922년 의열단의 국내거사를 준비해 김상옥 의사의 조선총독부 폭탄 투척 의거를 지원했다. 이후 베이징에서 민족유일당 운동에 참여, 1926년 10월 대독립당조직북경촉성회 결성에 기여했다.

1940년 9월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비서처장으로 일했고, 총사령부 편제 개편 이후 총무처장으로 한국광복군의 운영와 실무를 총괄했다. 공군의 필요성을 체감한 선생은 1943년 임시정부 국무위원회에 비행대 창설을 건의해 공군설계위원회의 설계위원 겸 부주임을 맡아 임시정부의 공군 창설준비를 추진했다.

해방 후 공군 창설에 힘을 쏟았으며 초대 국방부 차관, 공군사관학교 교장, 공군참모총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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