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혼식에 신랑 신부로 나선 10쌍의 국가유공자 부부가 주요 참석자들과 함께 인사를 하고 있다.

10월초 가을이 한껏 깊어가는 빛고을 광주, 화사하게 단장된 웨딩홀이 아침부터 분주하다. 평일이지만 오늘 10쌍의 합동결혼식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곳곳에 놓인 가을꽃들과 행사를 돕는 관계자들의 발길이 점점 바빠진다. 이 행사의 주인공은 결혼 60년을 맞아 ‘회혼식’을 치르는 광주 전남지역 국가유공자들이다. 60년을 잘 살아온 부부가 행복한 노후를 확인하는 날이다. 그리고 광주지방보훈청과 전우들이 뜨거운 축하를 보내는 자리다.

▲ 대기실에서 다정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최장길 김종금 부부.

오늘따라 신랑 국가유공자 최장길 님(85)과 신부 김종금 님(82)이 긴장을 하셨다. 조금은 쑥스럽지만 그보다는 새 신랑 새 신부마냥 설레고 ‘참 좋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와 닿는단다.

“이렇게 오기를 잘 했네요. 웨딩드레스도 입고, 사진 촬영도 하고, 정말 좋아요.” 옆에서 신부화장을 마치고 나타난 아내. 최장길 유공자의 눈길이 그윽하다.

행사는 광주지방보훈청(청장 김주용)이 지역의 6·25참전유공자를 모시고 최근 추진 중인 ‘따뜻한 보훈’의 일환으로 ‘참전유공자 위로연과 리마인드 웨딩’으로 마련한 것이다. 10쌍의 부부가 회혼식을 갖는 것과 함께 300여 명의 참전유공자를 모시고 함께 식사를 나누며 전우들 간의 우의를 나눈다는 취지다. 10쌍은 혼인의 주체로, 300여 명의 유공자들은 반가운 전우이자 하객이 된 것이다.

그래선지 오늘 행사를 앞두고 최장길 유공자는 아침잠을 설쳤단다.

그는 “설레는 마음에 새벽 5시에 일어났고,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일찍부터 나와 준비하고 하지만 피곤한 줄을 모르겠네요” 하며 활짝 웃는다.

“애들 키우고 여기까지 살아온 것에 대해 너무나 고마울 뿐이죠. 제대로 고맙다, 인사도 못했는데 이 행사가 그걸 대신해 주는 것 같아 조금이나마 짐을 덜게 되는 것 같습니다.”

최장길 유공자는 전쟁이 발발하자 20살이 채 되지 않은 18세 되던 51년 5월에 참전했다. 주변의 친구들보다 키가 유독 커 성인으로 보였던 덕분이다.

처음 제주에서 훈련을 받고 김해 공병학교로 옮겨 다시 3주간의 교육을 받은 그는 공병대대에 배치를 받아 경남지역 일원에서 레이더 진지 구축 등의 과제를 수행했다. 그에게는 후방이었지만 전쟁의 승리를 위해 꼭 필요한 핵심 시설을 직접 기획하고 지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입대 전에도 어렸지만 좌우익이 대립하면서 위기에 빠진 마을을 지키기 위한 활동에 참여했었죠. 지금 생각하면 동네 형들과 잠 안자고 순찰하며 지역의 기간시설을 지키는 일이 비록 작은 활동이라도 우리 마을, 지역, 나라를 사랑하는 참 좋은 마음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56년 11월, 오늘의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올해로 62년을 함께 살았다. 모두들 가난했고 힘든 시절이라 그 역시 쉽지 않는 여정을 걸어야 했다.

거의 맨손으로 고향 무안을 떠나 광주로 올라온 그는 아내와 두 손을 잡고 스스로의 인생을, 그리고 2남 2녀 아이들의 인생을 일궈야 했다. ‘평범하지만 열심히’ 살았다. 아이들도 반듯하게 잘 키웠다.

주마등처럼 살아온 시절이 떠오르자 그가 조용히 아내의 손을 잡는다. 혼잣말인 듯 ‘고맙지요, 고맙지요’를 되뇌면서.

현업에서 물러난 뒤로는 참전유공자회 사무장일로 전우들의 뒷바라지를 하기도 했다. 함께 운동을 하며 이웃들과 함께 나누며 살아온 그다. 그래서 오늘 그가 여기 자랑스럽게 전우들 앞에 서게 된 것인 지도 모른다.

오늘의 행사는 지역의 기업과 대학의 기부, 지능기부를 통해 만들어졌다. 김주용 광주지방보훈청장이 허리 숙여 “나라를 지켜온 국가유공자의 공헌을 치하하고, 오늘까지의 삶을 축하하면서, 앞으로도 따뜻한 보훈으로 보답하겠다”며 마음 깊이 인사했다. 지역 대학교 학군단이 도열한 가운데 신랑신부 퇴장이 이어졌다.

함께 참석한 국가유공자들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면서 환호를 올렸다. 모두가 함께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고, ‘따뜻한 보훈’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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