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진목 어르신과 이정남 섬김이가 올 봄 ‘국가유공자 나들이’에서 찍은 사진을 보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우리 이 여사가 신문에 나온다니 내 맘이 참 좋습니다. 우리 이 여사가 얼마나 착하고 좋은 사람인지 몰라요.”

벼가 노랗게 익은 논 초입에 자리 잡은 빨간 벽돌집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아흔 살을 바라보고 있는 6·25참전유공자 안진목 어르신이다.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한 모습과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참 고마운 사람’이라며 칭찬에 바쁘다. 어르신의 칭찬에 손사래를 치면서도 함박웃음으로 집안을 정돈하던 경기동부보훈지청 이정남 섬김이를 만났다.

 

섬김이 삼수생…늦어도 ‘모범활동’

이 섬김이는 삼수생이다. 섬김이에 지원하고 두 번을 떨어지고 나서야 섬김이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일도 배울 겸 선배 섬김이를 따라 나섰다가 타고 다니던 자동차를 폐차시킬 정도로 큰 교통사고를 당해 한동안 병원에 누워 있기도 했다. 그는 그때 ‘섬김이를 하는 것이 내 운명이 아닌가보다’라고 생각했다.

“일이 자꾸 어그러지는 것이 아쉬워서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힘을 낸 것이 내년이면 10년이네요. 그때 포기해버렸다면 어떻게 됐을지 종종 돌이켜볼 때가 있어요. 이렇게 저를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시고 저에게 의지하는 어르신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제 인생이 어떻게 됐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눈물 나지요.”

이 섬김이는 벽지를 주로 방문한다. 도심과 멀어 지원자가 별로 없는 외곽지역을 맡았다. 처음 섬김이 생활을 시작할 때는 몸도 마음도 힘들었지만 지금은 어르신들을 만나는 것과 이곳에서 섬김이 생활을 하는 보람이 삶의 모든 것이 됐다.

외곽지역으로 섬김이 활동을 나가면서 그동안 도심과 먼 지역이 각종 복지 관련 프로그램에서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등 소외돼 온 것이 늘 마음에 걸렸던 그는 지난해 경기동부보훈지청이 신설된 것이 아주 반가웠다고 한다. 보훈복지 예산과 인력에 여유가 생기면서 그가 섬김이 활동을 했던 지역 어르신들이 대거 발굴돼 집수리, 기초 생활물품 후원 등 많은 복지 수혜를 받을 수 있었다며 국가보훈처 ‘따뜻한 보훈’에 감사함을 표했다.

“따뜻한 보훈이 본격 도입되면서 유공자 어르신들이 더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요. 사소하지만 세심하게 챙겨드릴 수 있는 수단도 많이 생겼고요. 특히 용인 지역을 관할하는 경기동부지청이 지난해 신설된 것도 한몫했지요. 전에는 우리지역 지청이 워낙 많은 구역을 관할하고 있어서 순서가 돌아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후원물품도 늘어나고, 민원 해결도 전보다 크게 나아졌어요.”

그는 함께 외출해서 지인을 만나면 ‘우리 딸’이라고 소개하고, 곱고 예쁜 말로 고마움을 항상 표시해 주는 어르신들 덕에 자신의 삶도 행복하고 풍요로워졌다고 한다.

“제가 처음 찾아뵀을 때 문을 열어주지 않던 어르신이 계셨어요. 두 번째 방문에도 문을 열어주시지 않아 하릴없이 돌아서는데 ‘나는 어르신을 위해 왔는데 그냥 돌아가도 될까’싶었죠. 다시 어르신께 돌아가 문을 두드렸고, 밖에서나마 대화를 시작했어요. 그 이후로 꽉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이 조금 열려 즐겁게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서로 나누는 따뜻한 마음이 힘

그는 어르신이 섬김이인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다시 사회를 향해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도록 주로 말벗을 해드리며 어르신의 생활을 도왔다. 차상위계층 보조금을 연결해 주고, 보훈지청에서 지원하는 보청기, 행복박스 같은 물품을 후원받을 수 있게 거들기도 했다.

그는 어르신이 “이 여사가 와줘서 눈물이 날만큼 행복하네”라고 말씀하시면서 마당의 감나무에서 빨갛게 익은 감을 골라 따주시던 것을 잊지 못한다. 어려운 사정 속에서도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 성의를 보여준 어르신의 마음이 그가 계속해서 정성껏 섬김이 활동을 하게 한 원동력이 됐다.

“저도 사람이니까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더라도 이런 저에게 고맙다, 수고했다 말씀하시면 그 말 한마디에 어려웠던 일도 잊고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일로 뵙는 것이긴 하지만 ‘우리 딸이지 뭐’라고 말씀하시면 가장 보람되고요. 유공자 어르신들이 너무 좋아서 저희 친정아버지께 ‘아버지는 왜 참전하지 않으셨어요’라고 웃으며 말씀 드린 적도 있어요. 아버지는 그때 너무 어리셨대요. 하하.”

그의 이야기가 끝나갈 때쯤 안진목 어르신이 불긋하게 익은 대추가 가득 든 소쿠리를 내려놓았다. “힘들게 왜 이런 걸 따오셨어요” “대추가 아니라 대추할아버지라도 따주고 싶은 마음이지”라며 옥신각신하는 모습에서 ‘따뜻한 보훈’의 온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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