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맹기호 어르신과 신용자 섬김이가 활짝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부는 늦가을, 충주 맹기호 어르신 댁에서 그를 만났다. 낙엽이 날리는 스산한 바깥과 달리 정으로 훈훈한 어르신 댁에서는 지난번에 끓여두고 간 된장국에 왜 라면 국물을 부으셨냐는 잔소리가 비집고 나온다. 잔소리가 아주 성가시다는 장난기 넘치는 표정의 어르신과 달리 신용자 섬김이는 어르신의 섭생이 특히 마뜩치 않은 눈치다.

“잘 왔어요. 지금 신 선생이 한바탕 나를 타박 중이라오. 허허.”

애써 된장국을 끓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서가 아니라, 자주 라면을 끓이시는 어르신의 건강이 염려된 딸 같은 섬김이의 속 깊은 잔소리다. 신용자 섬김이는 어르신의 건강을 어린 자식 챙기듯 세심히 살피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믿는다.

벌써 12년 째 섬김이 활동을 하고 있다는 그는 12년 째 모시고 있는 맹 어르신이 아버지 같고 친구 같다. 워낙 오래 함께 한 지라 서로 표정만 보고도 기분을 알아차릴 정도라고.

 

어르신들 주시는 사랑에 ‘중독’

“저는 원래 장애인시설에서 그분들을 돕는 일을 오래 했었습니다. 섬김이를 시작한 친언니 소개로 보훈청으로 옮기게 됐지요. 저는 한 번 시작한 일을 그만두거나 바꾸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누군가를 돕는 일은 무엇이든지 보람차지만, 특히 어르신들이 제게 주시는 사랑에 ‘중독’됐는지 섬김이도 이렇게 오래 하고 있네요.”

한 번 결정한 일은 좀처럼 바꾸지 않고 우직하게 계속한다는 그는 장애인시설에서 섬김이로 자리를 옮겼을 때 처음엔 적잖이 당황했다고 한다. 국가유공자 어르신들의 남다른 자부심과 그에 따른 행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특유의 느긋한 성격으로 ‘오늘 하루만 잘 넘기자’ 하던 것이 이제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 됐다.

지금은 어르신들과 말벗을 해드리는 데도 도가 텄다. 마주앉아 화투장을 나누기도 하고 책을 읽거나 음식을 만들어 드리는 것도 선수가 됐다. 어떤 어르신은 신 섬김이의 방문 날짜에 맞춰 식재료를 사다 놓고 ‘맛있는 것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시기도 한단다.

“어르신들이 즐겁고 행복하면 제가 좋으니까 자꾸만 더 해드리게 돼요. 이제는 어르신께 무엇이 필요한지 금방 알고 척척 해드립니다. 어르신들은 외부활동을 가장 좋아하세요. 고령에 몸이 아프신 분들은 외출이 힘드시니까 지청에서 마련하는 봄나들이, 가을나들이, 목욕봉사 이런 것들은 가능한 한 빠지지 않고 모시고 다니려고 하지요.”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대수롭지 않게 ‘별로’라고 대답하며 ‘이제는 생활이지요’ 하면서 웃는다. 그런 그가 마음에 상처로 남은 어르신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냈다.

갓 결혼해서 아이도 없을 때 6·25전쟁에 참전한 남편을 잃고 평생 혼자 살아오신 미망인 어르신을 모실 때였다. 홀로 외로이 살아오셨을 어르신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서 각별히 보살폈다. 친정어머니께 하듯 팔짱끼고 마실도 나가고, 잡다하고 사소한 주제를 놓고 수다도 떨면서 고생스러웠던 젊은 날을 지금이라도 보상해드리는 마음으로 어르신을 모셨다. 어르신이 요양원에서 고생하시다 돌아가셨을 때는 마음이 너무 아파 차마 마지막 길을 배웅도 못해 드렸다.

 

진심어린 마음 고스란히 전달

“어르신들을 모시는 것은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저에게 사랑을 주시고 의지해주셨던 고마운 어르신들과 이별할 때가 가장 힘듭니다. 고령의 어르신들이 다음 주엔 계실까하는 걱정이 저를 가장 힘들게 하죠. 어르신들도 제가 조금만 늦어도 혹시 제가 사고라도 났을까 걱정을 감추질 못하세요. 서로서로 안부 걱정하면서 어르신들과 섬김이가 그렇게 더불어 살아가는 것 같아요.”

그는 한 어르신과 이별하는 슬픔을 또 다른 어르신을 성심껏 모시는 것으로 잊는다. 모든 국가유공자를 한 분처럼 대한다는 뜻이다. 그의 진심어린 마음은 어르신들께 고스란히 닿아 그는 어르신들의 정과 사랑을 아낌없이 받는다.

그가 일을 마치고 집을 나설 때면 일부러 밖으로 나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시는 어르신도 있다. 어르신의 그 마음이 고마워 더욱더 열정이 생긴다는 그다.

신 섬김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맹 어르신이 얼굴에서 장난기를 거두고 한마디 보탠다.

“우리 신 선생이 딸보다 나아요. 매일매일 이 늙은이를 찾아와주고 돌봐주고 걱정해주고…. 아닌 말로 신 선생 아니었으면 내가 어떻게 살았을까. 아무하고도 바꾸고 싶지 않은 보석이죠.”

그는 딸보다 낫다는 어르신의 말에 감동하면서도 쑥스러웠는지 “그래도 라면 국물은 안 돼요” 하면서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따뜻한 진심은 이렇게 통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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