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소를 나누며 환하게 웃는 김윤도 어르신과 김명숙 보훈섬김이.

매서운 겨울바람이 몰아치는 날, 6·25참전유공자 김윤도(88) 어르신 댁 앞에서 김명숙 섬김이(58)를 만났다. 그는 어르신이 애타게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며 빠른 걸음으로 앞장섰다. 어르신은 문이 열리자마자 섬김이를 환한 얼굴로 반기면서 집을 데워놨다며 얼른 들어오라고 재촉하셨다. 김명숙 섬김이가 일을 마치고 집을 나설 때면 성치 않은 무릎에도 불구하고 그가 점처럼 작게 보일 때까지 밖에 나와 배웅을 하신다.

김윤도 어르신은 오늘도 새삼스레 연신 김명숙 섬김이 자랑을 늘어놓는다.

“전에 양말이 발목을 죄서 힘들다고 지나가는 말로 했더니 금세 발목이 느슨한 새 양말을 찾아서 구해다줬어요. 김 선생이 이렇게 작은 것까지 잘 챙겨주니까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딸 같고, 자식 같고 그렇죠.”

어르신들을 모실 수 있음에 ‘감사’

김명숙 보훈섬김이는 요양원에서 7년간 근무하던 중 보훈섬김이로 일하던 친구의 추천으로 이 일을 시작했다. 2013년, 처음 일을 시작할 때 배정받은 열두 분의 어르신들을 모시는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힘들었던 과정을 거쳐 이제는 어느덧 베테랑 섬김이가 됐다.

그는 어르신들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서른 중반의 나이에 갑작스레 아버지를 여의고 상실감이 컸던 그이기에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사랑을 돌려드리지 못한 한을 국가유공자 어르신들을 모시면서 풀고 있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 호칭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진짜 피붙이는 아니지만 나라를 위해 당신의 젊음을 바쳐 피나는 전투 속에서 나라를 지키셨던 어르신들이잖아요. 이제 이분들이 연세가 많아 제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시고, 제가 이분들을 섬길 수 있음에 감사하죠. 어르신들의 하루하루를 편안하게 도와드릴 수 있다는 자체가 제게는 기쁨이에요.”

모시던 어르신 중 두 분이 최근에 갑자기 돌아가셔서 상심이 컸다는 그의 눈에 살짝 눈물이 비쳤다. 자신을 딸처럼 대해주셨던 두 분께 감사드리고, 모시는 동안 가슴 벅차도록 행복했다는 말을 전하지 못해 못내 아쉬워했다.

정을 나누고 곁을 지키는 섬김이

집안일도 청소도 요리도 만능이지만, 김명숙 섬김이가 가장 공을 들이는 일은 혼자 계시는 어르신이 외로움과 우울감에 빠지지 않도록 활력을 북돋우는 일이다.

“몸 한쪽에 마비가 와 거동이 조금 불편한 어르신이 계셨는데 처음엔 외출을 아예 안하려고 하셨어요. 제가 어르신의 손을 잡아끌고 집 앞에도 나가고, 시장에도 다녔어요. 나중에 어르신께서 ‘몸이 성치 않은 자신을 창피하다 생각했는데 섬김이가 이렇게 같이 다녀주니까 자신감도 생기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즐거움을 다시금 알게 됐다’고 고마워하셨어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우리 어르신들 덕분에 섬김이 일을 계속하는 거죠.”

그는 어르신들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정을 나누고, 묵묵히 곁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섬김이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처음에는 ‘가족도 아니고 남남인 내가 어르신들의 얘기를 들어드리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되겠느냐’ 생각했는데 어르신들은 제게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어 좋다고 하셔요. 심적으로 의지할 곳이 없어 외로워하시는 분들이 많죠. 듣고 어떻게 좀 해결해달라고 하시는 말이 아니라 ‘그저 들어줬으면, 옆에 있어주면 좋겠다’ 하면서 말씀하시는 거죠.”

행여 자신이 아프면 어르신들을 모시는 일에 문제가 생길까 수영 등 꾸준한 운동으로 철저하게 몸 관리를 한다는 그의 얼굴이 밝게 빛났다. “몇몇 어르신들은 제가 어르신 집을 한창 바쁘게 청소하고 있으면 저 힘들까봐 그만하라고 야단이세요. 김선생 없으면 이제 생활이 불가능할 거라며 힘들다고 그만둘 생각하지 말고 계속 다녀야 한다고 독려(?)하세요. 하하. 덕분에 제 건강을 한 번 더 챙기고, 돌아보게 돼요. 제가 건강해야 어르신들 오래오래 챙겨드리죠.”

행복을 나눠주는 그의 얼굴에서 섬김이로서의 소명의식과 자부심이 비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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