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화사한 벚꽃
꽃잎이 물결처럼 일렁인다
너울거리는 꽃을 맞는데
그 위에 친정어머니 얼굴
아른거린다

다시 봄이다. 순백의 화사하고 고운 벚꽃이 눈부셔 현기증이 날 것 같다. 바람이 살랑일 때마다 하얀 꽃잎이 물결처럼 일렁인다. 너울거리며 날리는 하얀 꽃을 맞으며 걷는데 꽃잎 위에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얼굴이 아른거린다.

꽃을 좋아하는 어머니 때문에 친정집은 꽃집 같았다. 봄을 맞는 친정집은 화초를 정성스럽게 돌보는 어머니의 손길로 해마다 꽃 대궐이었다.

어머니가 안 계셔도 봄은 오고 꽃은 핀다. 미호천 둑을 따라 발을 떼는데 꽃이 진 자리에 이미 초록의 잎사귀가 들어앉았다. 내가 어머니와 이별했듯 나무도 꽃과 이별해야 하는 시간인가 보다.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는 봄은 여자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내 안에 새겨진 봄은 늘 상실의 시간이었다. 타고난 체질 탓인지 잦은 병치레로 내게 봄은 오히려 체력과 청춘을 탕진하는 계절이었다.

봄을 떠올리면 아픔, 고통이란 단어가 먼저 생각났는데 몇 해 전부터 몸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해도 기특하고 대견할 만큼 건강해지고 난 후 봄이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이었나 하며 감탄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다시 봄 앓이가 시작됐다.

제아무리 예쁜 꽃도 열흘은 못 간다는 말이 있듯이 벚꽃은 고작 일주일간 피었다가 진다.

이별한 사람을 만날 수 없는 것처럼 벚꽃이 피는 시기를 놓치면 그해에는 다시 벚꽃을 볼 수 없다. 얼마나 아쉬우면 ‘벚꽃 증후군’이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벚꽃 증후군’은 벚꽃 나무 아래서 함께 추억을 새기던 사람을 떠나보낸 이들이 이별의 아픔을 앓는 일종의 신경증이다.

특히 벚꽃이 많은 일본에는 해마다 벚꽃 피는 봄이 오면 사랑의 추억 때문에 벚꽃 증후군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한순간 화려하고 아름답게 만개했다가 흩날려 사라지며 흔적마저 지워내는 벚꽃처럼 우리네 사는 일도 다 때가 있는 것 같다.

살아계실 때 어머니 모시고 꽃구경 자주 다닐 것을. 그때는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지나고 나서 후회하는 것이 인생이던가. 벚꽃을 좋아하는 어머니한테 마음 놓고 꽃구경 한 번 시켜드리지 못한 것이 이렇게 가슴에 박힐 줄이야.

누구나 벚꽃이 피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고 상심하는 사람들처럼 나도 이제 벚꽃 피는 계절이 돌아오면 어머니 생각에 벚꽃 증후군에 시달리게 될 것만 같다. 부모는 자식들의 추억이 되기 위해 산다고 하는 말이 벚꽃으로 하여 더욱 실감 나는 봄이다.

박종희 국가유공자인 시부모님과 아버님을 모시고 살아왔다. 2000년 월간문학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한 그는 세종시에 거주하며 수필창작 강사 등으로 이웃의 글쓰기를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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