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례 보훈섬김이가 장윤근 어르신과 담소를 나누고, 부축해 가며 함께 걷고 있다.

파릇파릇한 봄나물들이 빼꼼히 얼굴을 들이미는 초봄, 신춘례(57) 섬김이는 장윤근(86) 어르신 댁에 도착하자마자 현관문과 창문을 활짝 열고 봄바람을 집안 가득 들인다.

서울북부보훈지청 신춘례 섬김이를 맞이하는 장윤근 어르신의 얼굴에도 화색이 돈다. 서울 수락산 아랫자락 위치한 주택, 귀가 조금 불편한 어르신은 섬김이가 방문하는 날에는 미리 시간 맞춰 현관문을 살짝 열어두신다. 혹여나 문을 잠근 채로 깜빡 잠이 들까봐 하는 ‘준비’다.

신춘례 섬김이는 집안을 바삐 정리하고, 어르신 옆에 앉아 병원은 잘 다녀오셨는지, 전에 만들어드린 반찬은 입에 맞았는지, 그간 밥은 잘 챙겨 드셨는지 세심하게 물어본다. 말수가 적은 어르신은 그저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그래도 그 미소로 소통하는 두 사람 사이에는 깊은 정이 흐른다.

신춘례 섬김이는 동네 친구 분들과 외출을 좋아하시는 장윤근 어르신을 위해 요즘 지청에서 하는 행사나 활동이 있을 때는 달력에 적어두실 수 있도록 미리 알려드리고, 전날 전화로도 알려드린다.

“혼자 계시면 외롭고, 밥도 잘 안 챙겨 드실 때가 많아요. 그래서 친구 분들과 같이 가면 좋을 곳을 찾아서 알려드리기도 하죠. 바깥바람도 쐬고 친구 분들과 놀다가 오시면 얼굴이 눈에 띄게 더 밝아진다니까요.”

과묵한 장윤근 어르신도 신춘례 섬김이에 대해 말해달라는 요청에 “잘 챙겨줘서 좋지, 다 고마워”라는 한 마디를 어렵게 건넨다. 그 짧은 말 한마디에 섬김이를 생각하는 어르신의 마음이 가득 담겨 있음은 물론이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정

신춘례 섬김이는 어르신들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그를 반기는 마음을 다 알고 있다고 한다.

“어르신들은 대체로 말로 표현을 잘 안 하세요. 그래도 저는 다 알죠. 장윤근 어르신처럼 슬쩍 현관문을 열어두시거나, 일 많이 하는 날에는 ‘일 그만해’라고 하시기도 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제가 안보일 때까지 배웅해주시는 걸 보면 그 마음을 다 전달되죠.”

신춘례 섬김이는 올해 섬김이 15년차다. 서울북부보훈지청에 처음 보훈섬김이 제도가 생겼을 때부터 활동했다. 섬김이 일을 시작하기 전 5년 정도 시어머니 간병을 했고, 그 후 어르신들을 모시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국가유공자인 시아버지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보훈섬김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

“그냥 일이라고 혹은 직업이라고 생각했으면 이렇게 오래 못했을 거예요. 제 아버지, 어머니라고 생각하니까 어르신들 모시는 게 자연스럽고 기쁜 일이고 당연한 일이 됐어요. 어르신들도 이젠 서슴없이 ‘딸’이라고 불러주시니 우리는 한 가족이죠. 딸처럼 챙겨드리기도 하고, 가끔은 어르신들과 함께 운동도 하고, 라면 말고 밥 차려 드시라고 딸처럼 잔소리도 해요. 하하.”

매일 아침 어르신들을 뵙기 위해 나서는 길, 그는 ‘우리 어르신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주세요’하고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그 기도가 하늘에 닿았는지 지금 모시는 열 분의 어르신들 모두 크게 아픈 곳이 없다고 한다. 참 고마운 일이다.

그는 섬김이 일을 하면서 만난 어르신 한 분 한 분을 모두 마음에 담아둔다고 한다. 오래된 분들도, 지금 모시는 분들도 모두 사소한 버릇, 식성, 습관 하나하나 생생히 기억한다. 사진을 찍어둔 것처럼.

“예전에 굉장히 사이가 좋은 어르신 부부가 계셨어요. 두 분 다 연세가 많으셨지만 저를 ‘딸내미’라고 불러주시면서 지냈는데, 건강하셨던 아버님이 명절에 갑작스레 돌아가셔서 함께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도 그 분이 좋아하셨던 갈비찜을 생각하면 어르신 얼굴이 떠오르며 눈물이 나요. ”

하루하루가 보람되지만 그가 섬김이 일을 하며 새삼 보람을 느낄 때는 바로 서른살 딸이 어르신들을 먼저 돕고 공경하는 모습을 보면서다.

“제가 보훈섬김이 일을 하면서 집에서 어르신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고 그러니까 아이들이 많이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딸이 길을 가다가 연세 드신 분들을 보면 선뜻 나서서 도와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보훈섬김이 일을 하길 참 잘했구나’하는 생각을 한 번 더 하게 돼요.”

그는 15년간 궂은 일을 도맡아 하다 보니 자꾸 생채기가 나서 손이 미워졌다고 말하며 손을 가린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일손이 돼주고, 어르신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는 그 손은 오히려 4월의 봄바람처럼 온기가 가득했고 빛이 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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