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년 3·1혁명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2019년이 저물어 간다. 3·1혁명에 나섰던 선열들과 임시정부와 의병·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선대들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이고 태평양의 서쪽 끝자락에 자리 잡은 우리나라는 해양세력 대 대륙세력, 유교문화권 대 기독교문화권, 자본주의세력 대 공산주의세력의 대척지대가 되었다. 그래서 늘 주변 열강으로부터 침략과 분단의 위협을 받아야 했다.

최근 북핵과 미사일 발사로 조성된 한반도 위기상황은 역대급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오래된 현재성’이라 할 수 있다. 시민들의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한반도 위기상황은 평화지대로 전환되고 있다. 한반도는 지구상에서 마지막 남은 유일한 냉전지대다. 유엔가입 200여 개국 중 유일한 분단국이다. 분단 이후 열전·냉전·신냉전을 모두 겪은 유일한 민족이다.

지금 중국은 시황제를 꿈꾸는 시진핑의 대국주의, 도무지 언행에 갈피를 잡기 어려운 미국 트럼프의 자국우선주의, 21세기 차르의 길을 걷고 있는 푸틴의 러시아, 한반도 화해 분위기에 어깃장을 놓으면서 군사대국을 추진하는 아베 일본, 동서남북 어디에도 우리 운명이 평탄해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지금 엄중한 역사의 전환기에 처해있다. 3·1혁명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보내는 현시점은 역사의 정도(正道)와 정맥(正脈)을 회복하여 남북화해와 민주공화정의 방향으로 발전하느냐, 식민지 잔재와 남북대결, 각종 적폐를 미봉한 채 전제적 퇴행을 거듭하느냐의 갈림길이다.

국가도 하나의 유기체에 속한다. 창업→수성→경장→쇠퇴의 과정을 걷게 된다. 자주독립과 반봉건 민주공화제를 기치로 봉기한 3·1혁명과 이를 바탕으로 수립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창업이라면,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6·25공산침략 분쇄 그리고 산업화와 민주화는 수성에 해당한다. 지금은 경장(更張)의 시기다. 다른 용어로 말하면 개혁이다. 조선왕조가 병자·정묘 양란을 겪고도 경장을 하지 못한 채 낡은 봉건체제를 유지하다가 결국 왜적에게 국치를 당하고 말았다.

1884년의 갑신정변, 1894년의 동학혁명이나 갑오경장 중에서 하나만이라도 성공했다면 나라가 망하는 비극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1884년 갑신정변은 1868년 일본 메이지 유신에 불과 16년 차이다.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이 근대적 국가개혁을 실천할 때 조선왕조는 기껏 왕권이나 강화시키는 칭제건원 따위로 미봉하고 말았다. 경장의 시기에 제대로 개혁을 하지 못하면 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3·1혁명의 성과로 태어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자주독립’과 ‘민주공화’라는 두 테제를 내걸고 수립되었다. 이것은 임시정부의 목표이면서 바로 법통을 승계한 대한민국의 가치로 이어진다. 하지만 ‘자주독립’은 유엔회원국 중 유일하게 전시작전지휘권이 외국군에게 넘겨진 상태이고, 올 한해에 주한미군 주둔경비(한미방위비분담금)가 1조389억 원에 달한다.

헌법 제1조는 ‘민주공화국’이다. 군사독재자들도 이 조항만은 손대지 못하였다. 그동안 ‘민주’는 4·19혁명·반유신투쟁·부마항쟁·광주민주화운동·6월항쟁·촛불혁명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실천되고 있다. 하지만 ‘공화’는 아직 초보적인 발걸음도 떼지 못한 실정이다. 한국의 지난 세기 즉 20세기의 전반기는 독립운동의 혈사이고, 후반기는 산업화와 민주화운동의 통사에 속한다. 그 결과 독립을 쟁취하고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성취하였다. 이제 21세기 상반기는 남북화해협력과 통일에 이르는 평화운동이 시대가치가 되어야 할 것이다.

김삼웅 / 전 독립기념관장

저작권자 © 나라사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