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는 내 나이 20세 세상에 두려울 것 별로 없던 시절, 1960년 동국대 2학년 재학 중이었다. 4월 19일 아침 석조전 2층에서 막 수업을 시작할 즈음 한 학생이 강의실 앞 문으로 들어와 어제 고려대 학생들이 3·15부정선거 항의 시위를 마치고 귀가 중 괴한들의 습격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하고, 우리도 동참해야 한다고 외쳤다.

우리는 모두 일제히 일어나 을지로를 지나 스크럼을 짜고 서울시청으로 향했다. 연도에 시민들이 나와 박수와 환호로 우리를 격려했다. 한껏 사기가 오른 채 시청광장에 도착하니 이미 수많은 학생들이 광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경무대로 향하던 중 우리가 서있는 곳이 마침 경복궁과 광화문 방향이어서 우리가 대열의 선봉에 서게 되었다.

경무대 앞, 갑자기 총소리가 요란하게 났고, 내 옆에 학생이 앞으로 고꾸라지는 것을 보고 황급히 도로 옆 가게로 피신했다.

뒤따라 몇 학생이 들어오고 피신해 숨 죽이고 있는데 경찰이 총을 들이대며 어서 나오라는 명령에 따라 일렬로 나갔다. 경찰 한 명이 무어라 욕을 하면서 총개머리판으로 나의 가슴을 후려쳐서 그 자리에서 억하고 쓰러졌고, 잠시 후에 나는 학생들의 부축을 받으며 도로로 나왔다. 조금만 움직여도 경찰들이 곤봉으로 후려쳐 그야말로 지옥보다 더한 시간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에 군 트럭이 들어왔고 차바퀴 밑으로 피가 쉴 새 없이 흐르는 것을 목격했다. 그때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날 우리학교 노희두 군이 경무대 앞에서 희생됐다는 소식에 우리는 시립동부병원을 찾았다. 같은 시위 현장에서 외쳤던 그의 죽음은 우리가 이뤄낸 민주주의의 제단에 바쳐졌고, 우리 모두의 가슴에 꽃으로 남았다.

김기권 (4·19혁명유공자, 전 남양주 오남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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