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춘학 조경관리원이 기계톱으로 정성을 다해 국립5·18민주묘지의 경계수목을 다듬고 있다. 

사방으로 넓게 펼쳐진 민주묘소의 잔디가 노랗게 변신해가고, 묘소 곳곳의 낙엽들이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야산 경계 쪽에서 요란한 기계음이 들린다.

 

국립5·18민주묘지관리소 유춘학 조경관리원(56)이 부지런히 기계톱을 움직이고 있다. 그의 손을 거친 경계수목들이 가지런히 정리되고 있다. 겨울 전에 웃자란 수목들을 깨끗하게 정리해 두면 내년 봄 아름답게 푸르름을 자랑하리라는 기대에 유 관리사의 표정이 밝다.

유 관리원은 날마다 내 집처럼 민주묘지를 가꾸는 그의 부지런함과 이곳을 찾는 유족 관람객들에게 미소를 잃지 않는 그의 따뜻함을 인정 받아 최근 국가보훈처로부터 ‘든든한 보훈인’에 선정됐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응원한다.

“2006년부터 조경을 맡아왔으니 묘지 곳곳이 손바닥처럼 환하게 보이죠. 한 그루 한 그루 나무 상태를 외우고 있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듯 일하고 있습니다. 이 나무들이 모여 우리 민주묘지의 분위기를 만들고, 시민들이 즐겨찾는 이웃같은 민주묘지가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지요.”

연간 70만 명이 찾는 국립5·18민주묘지, 연 면적만도 5만여 평. 게다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희생한 그분들의 의지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에 기여한 의미를 생각하면 어깨가 무거울 만하다. 그러나 그는 계절별 꽃밭 조성과 함께 무려 1,000주에 달하는 소나무 전정작업, 벤치와 그늘막 관리 등으로 찾는 이들에게 소중한 쉼을 주기 위해 작은 시간도 아껴가며 영내를 보살핀다.

“저 역시 1980년 항쟁 당시 작은 역할을 담당했고, 그것으로 민주유공자가 된 입장에서 시설 하나하나에 더욱 마음이 가는 건 사실입니다. 묘지의 주인들 역시 한 분 한 분 제 이웃이고 친구입니다. 이곳을 찾는 유가족들도 저의 부모님이자 동료이기도 하고요. 형제 부모를 살핀다는 마음이고, 한편으로는 살아남은 이로서의 부채를 갚아나간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담담하게 얘기하고 있는 유 관리원은 1980년 당시, 동네에서 목욕을 위해 친구들과 이동하던 중 느닷없이 날아온 총알이 어깨 부분을 관통하는 부상을 입었다. 어디서부터 왜 날아왔는지 모를 총알이었고, 그는 상처를 부여잡고 병원으로 달려가서야 그것이 관통상이고 큰 부상이란 걸 알았다. 그가 다친 곳은 이후 진상규명 논란을 빚은 ‘주남마을 학살 현장’ 근처였다.

“지금도 저는 당시 벌어진 일들의 진상 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후손을 위해서라도 역사의 진실이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저에게는 이 역사적 장소를 잘 가꾸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더 많이 역사를 알고 가도록 돕는 일도 특별하게 중요하지요.”

그는 봄 가을 건조기에는 주기적 순찰활동을 통해 혹시 모를 산불 예방에도 열심이다. 지난 7월에는 폭우에 대비해 유실이 우려되는 묘지 곳곳의 배수로를 사전에 정비해 큰 피해 없이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그는 매년 5월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릴 즈음이면 더욱 긴장하며 시설을 하나씩 꼼꼼히 살핀다. 이팝나무가 피어 환하게 밝아지는 기념식장에 슬픔보다 민주주의를 향한 의지들이 더울 활짝 꽃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다. 그리고 기념식 때 만나는 유족, 유공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서로를 격려하며 손을 잡는다.

그는 조경관리원이자 이 민주묘지를 온몸으로 지키는 지킴이라고 자신을 이해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고 작업현장으로 돌아가면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든든한 보훈인’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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