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보다 장엄한 석양의 태양”

다시 봄을 향한다. 그래도 사방은 막혀 있다. 여기에 창을 낸다. 책을 통해 세상 밖을 본다. 그 책이라는 창으로 호흡을 한다. <나라사랑>은 새로운 기획 ‘독서-책 속으로’를 시작한다. 이 기획은, 책의 겉을 읽지 않고 속을 들여다 본다. 함께 읽으며 세상과 우리를 살핀다. 거기에서 다른 미래를, 거기에서 환하게 열리는 내 안을 발견할지도 모를 일이다. 첫 여행은 우리 시대를 오래 살아온 선배 김형석 교수의 ‘백세일기’와 이어령 교수의 ‘한국인 이야기’로 시작한다.

 

‘백세일기’

100년을 넘겨 가장 건강하게 살고 있는 김형석 교수의 살아 있는 젊은 일기. 지난 해 100세를 넘긴 그는 오늘도 지나온 격량의 세월을 돌아보고 지혜를 풀어내며 살고 있다. 이 책은 소박한 일상과, 온몸으로 지나온 지난날, 100세의 ‘삶의 철학’, 고맙고 그립고 사랑하는 사람들 등 네 주제로 삶의 조각을 반짝이며 드러낸다.

△ 나는 나 됨을 찾아 성장하고 새로워지며,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일기 쓰기’를 한 것이다. 일기를 쓰는 것이 새로운 출발을 위한 하나의 과제가 되었다. 지난 2년간의 일기를 읽고 오늘의 일기를 쓰면 좀 더 새로운 내일을 기대하게 된다. 일기는 나를 사랑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 나는 인적이 드물 정도로 작은 농촌마을에서 하늘의 구름을 보면서 자랐다. 아버지를 따라 앞산 꼭대기까지 오르곤 했다. 무한히 전개되는 파란 하늘에 언제나 다른 형태로 태어났다가 자취를 감추는 구름을 보는 것이 소박한 즐거움이었다.

나이 들면서는 여유로울 때면 구름 감상에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길을 떠나 지방 산수를 찾기도 했다. 장년기에는 세계 여행 중에도 구름 보기를 빼먹지 않았다. 그렇게 구름을 친구삼아 사는 동안에 나도 모르게 받아들인 교훈이 있다. ‘욕심 없는 사람이 행복해진다’는 가르침이다.

내가 잘 아는 친지 중에서 100세가 넘도록 건강하고 행복하게 장수한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무욕의 인생관을 갖춘 사람들이다. 무소유는 그 작은 부분의 하나일 뿐이다.

△ 나는 깊은 고뇌에 빠졌다. 신사 참배를 하며 학교에 머무를 것인가, 거부하고 떠날 것인가. 같은 반 윤동주는 만주 간도로 떠났고 나는 자퇴했다. 고향 교회의 김철훈 목사와 장로들이 신사 참배를 거부한 죄로 고문당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신앙적 양심과 애국심을 포기할 수 없어서였다. 나도 그 길을 따라야 한다고 결심한 것이다.(중략) 다시 학생이 된 첫날, 신사 참배를 가야 했다. 평양 신궁 앞에 줄지어 섰다. 체육 선생이 구령을 내리고 우리가 90도로 절하고 퇴장할 때였다. 맨 앞에서 경례하고 돌아서는 교장의 주름 잡힌 얼굴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진 것이었다.

△ 바로 언덕 아래에는 내가 즐겨 올려다보곤 하는 활엽수가 있다. 봄철이 되니까 잎사귀가 대부분 떨어져 있었다. 싹이 피기 위해서는 자리를 양보해야 하고, 낙엽이 되어서는 다른 나무들과 숲을 자라게 하는 비료가 돼야 한다. 모든 인생과 나도 그래야 하듯이….

△ 지금의 나이가 되어 깨닫는 바가 있다. 내가 나를 위해서 한 일은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공수래공수거’라는 말 그대로이다. 더불어 산 것은 행복을 남겼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니까. 이웃과 사회를 위해 베푼 사랑은 남아서 역사의 공간을 채워준다. 가장 소중한 것은 마음의 문을 열고 감사의 뜻을 나누며 사랑을 베푸는 일이다. 더 늦기 전에 해야 할 인생의 행복한 의무이다.

△ 내 나이 100세. 감회가 가슴에서 피어오른다. 산과 자연은 태양이 떠오를 때와 서산으로 넘어갈 때 가장 아름답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100세에 내 삶의 석양이 찾아들 때가 왔다. 아침보다 더 장엄한 빛을 발하는 태양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다. (김형석, 전 연세대 교수, ‘백세일기’, 김영사)

“신이 만든 꼬부랑 고갯길”

 

‘한국인 이야기 : 너 어디에서 왔니’

60여년 간 한국 사회와 지성계에 끊임없는 파문을 일으켜 온 이어령 교수의 ‘한국인 이야기’. 이 책은 암 선고와 수술 등의 과정을 거치며 더 깊어진 그의 철학이 산고 끝에 내놓은 이야기들이다. 올해 89세에 접어든 그의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 인생의 과정을 하나씩 따라 밟는다.

△ 나는 그곳에 있었다. 태고의 바다, 어머니의 양수 속은 어둡지만 참으로 고요하고 아늑했을 것이다. 하루에 1밀리씩 자란다는 수정란의 플랑크톤 같은 미생물에서 아가미와 지느러미가 달린 물고기 모양으로 변해간다. 지구 생물의 진화 과정으로 본다면 10억 년의 세월이 지나간 셈이다.(중략) 그러다가 드디어 손톱, 발톱이 생기기 시작하면 나는 어느새 쥐와 같은 포유류가 되고 그 몸에 뽀얀 잔털이 자라면 영장류인 원숭이 모습으로 바뀐다. 그래도 인간이 되려면 아직 수백만 년이 지나야 한다. 그래야만 나는 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어떤 서사시도 이렇게 스케일이 크고 환상적인 변화를 보여준 적이 없다. 고생물학자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우리는 어머니 바다(양수) 속에서 20억년, 더 올라가면 38억년의 기나긴 생물의 계통 발생 과정을 단 10개월 만에 치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 사람들의 일생을 종교적으로 보면, ‘흙에서 흙으로’이고 사회복지적으로 보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자연 생물학적인 시각에서 보면 ‘자궁에서 무덤까지’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으로 하자면 사람의 일생은 태어날 때의 기저귀 천에서 시작하여 수의의 천으로 끝나는 이야기다. ‘천에서 천으로(Clothes to Clothes)’다.

△ 어깨너머로 요리하는 것, 세탁하는 것, 바느질하고 청소하는 어머니의 가사와 집안 구석구석을 다 구경한다. 나들이를 갈 때 바깥 풍경은 기본이요, 동네 아주머니의 얼굴과 목소리도 익힌다. 서양 아기들이 요람에 누운 채 아무것도 없는 천장을 바라볼 때, 우리 아이들은 엄마 등에 업혀 세상을 보고 듣는다. 앞으로 살아갈 세상을 어머니의 어깨너머로 미리 느끼고 배우는 현장 학습이다.

△ 물과 불은 분명히 상극한다. 물은 차갑고 불은 뜨겁다. 물은 하강하고 불은 거꾸로 상승한다. 그런데 물의 영혼은 반대로 김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고 불의 영혼은 재가 되어 거꾸로 땅속에 묻힌다. 그런데 이렇게 대립하고 갈등하던 물불이 조왕님이 계신 부엌에 들어오면 놀라운 조화의 힘으로 밥을 짓고 국과 찌개를 끓인다. 물과 불이 같이 있으면 상극은 상생으로 변해 맛있는 문명의 밥상이 차려진다.

△ 꼬부랑 할머니 이야기는 왜 모든 것이 꼬부라져 있을까. 사람도 지팡이도 길도 고개도 강아지, 토끼, 사슴 같은 모든 짐승들, 나무와 풀까지도 왜 모두 꼬부라져 있을까. “직선은 인간에 곡선은 신에게 속해 있다”고 한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명언이 떠오르지 않는가, 신이라는 말을 생명의 원천으로 바꿔놓으면 된다.(중략) ‘직선’이란, 어떤 목적을 향해 곧게 그려진 최선의 지름길이다. ‘직선’은 자연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신이 아닌 인간에 의해서 처음으로 이 세상에 만들어졌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냥 인간이 아니라 문명의 본질을 ‘직선’에서 발견한 서양인들이라고 말이다.(중략) 한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꼬부랑 고갯길은 인간이 만든 게 아니라 ‘자연=신’이 만든 길이다.

(이어령, 전 이화여대 교수, ‘한국인이야기’, 파람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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