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최덕휴기념관에서 최덕휴 화백의 아들 최희용(가운데) 지회장과 며느리 허경숙(왼쪽) 관장, 손녀 최은혜(오른쪽) 씨가 함께 최 화백의 그림 ‘불암사의 난춘’ 앞에서 그의 작품세계를 설명하고 있다.

화가의 꿈을 잠시 뒤로 하고 광복군으로 항일 투쟁에 투신한 후 다시 6·25전쟁에 참전했던 고 최덕휴 화백. 죽음을 넘나드는 격동의 세월이 지난 후 40여 년간 한국 화단과 미술교육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최 화백은 그림에 한 평생을 바친 독립운동가이자 참전유공자였다. 1998년 타계한 그의 정신과 그림에 대한 열정을 잇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최 화백의 후손 최희용 광복회 경기 용인지회장을 만났다.

“내년은 저의 선친이신 최 화백의 탄신 100주년입니다. 화가로 독립운동에 참여하시고, 이어 6·25전쟁에 참전하신 그분의 뜻을 오늘에 잘 잇기 위한 사업을 다양하게 기획하고 있습니다. 특별전을 통해 작품세계를 재평가하는 일을 포함해 조국을 위해 애썼던 삶의 자취들을 잘 알려 후손들의 귀감으로 삼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봄기운 완연한 가운데 봄꽃 사이로 따뜻한 봄비가 비치는 경기 용인의 최덕휴기념관 앞에서 최희용 지회장이 선친의 삶과 작품에 대한 얘기를 이어갔다.

“화가로 광복군에 참여하신 분은 아버님이 유일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풍찬노숙 하시며 행군하시고 훈련을 받으셨지만, 광복 후에는 여러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민하지 않고 그림과 미술교육의 길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통해 한국 미술교육계에, 그리고 화단에 큰 역할을 하셨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광복군이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화백이시죠.”

최 화백은 일본 도쿄미술학교 유학 중 1944년 1월 강제로 일본군에 의해 중국 최전선으로 끌려갔다. 그는 전선으로 이동 중 무작정 이탈했고, 중국 창사 부근 한 농가의 벽에 도배된 신문에서 임시정부의 활동과 독립군에 대한 기사를 읽은 후 독립군에 합세하기로 결심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임시정부 근거지인 충칭으로 향한 최 화백은 우선 중국군으로 입대해 활동하다 1945년 2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제1지대 제3구대 제1지역책으로 임명돼 일본군과의 본격적인 전투를 준비하게 된다.

“아버님이 회고하신 내용을 보면 ‘일본군에서의 탈주는 한 가닥 일엽편주를 타고 망망대해에 도전하는 필사의 모험’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충칭의 임정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해서도 ‘대나무 장대로 하늘의 별을 따려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지만 뜻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신념으로 도전했다’고 하셨습니다. 당시의 그 절절한 심정이 너무나 잘 드러나 있는 부분이죠.”

광복 후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온 최 화백은 6·25전쟁이 일어나자 고민하지 않고 입대를 결심했고 전장으로 향했다. 소위로 시작한 군 생활은 전쟁이 끝나고 국군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인 1956년까지 이어져 육군훈련소와 육군본부, 국방부 등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20세기를 온 몸으로 달려온 그의 삶은 네 벌의 군복(일본군, 중국국민정부군, 광복군, 국군 군복)에서 상징적으로, 그리고 극명하게 표현된다. 그래도 그가 있어야 할 곳은 미술세계였다. 그는 다시 붓을 들었고 현장으로 돌아왔다.

“역사의 현장에서 돌아온 아버님은 미술교사로, 미술교육가로, 대학교수로, 세계미술교육학회(INSEA) 아시아 회장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셨습니다. 아버님은 평생토록 다른 곳을 보지 않고 미술교육과 후진양성, 작품활동에 매진하면서 사셨습니다.”

그의 뜻은 고스란히 후손에게로 이어졌다. 최희용 지회장과 현재 기념관 관장일을 맡고 있는 허경숙 관장은 부부이자 최 화백의 제자로 뜻을 잇는 일을 하고 있다. 최 지회장의 차녀 최은혜 씨도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미술을 전공했고 현재 이화여대 등에서 강의를 하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최 지회장은 전공을 실용미술로 이어가 엘지애드 등 광고회사에서 국가적으로 중요한 프로젝트 홍보를 맡아 수행하기도 했다.

“지금부터 준비해 부친 탄생 100년이 되는 내년에는 좀 더 의미 있는 사업을 해볼까 기획 중입니다. 작품이란 본인이나 유족이 소장하는 것이 아니라 널리 함께 향유하는 것에서 의미가 있을테니까요. 아버님이 살아계실 때 서울시립미술관과 오래 봉직하셨던 경희대 미술관에 다량의 작품을 기증하신 것도 그런 뜻이지요”

최 지회장은 지금도 선친의 정신을 이어 광복회 용인지역에서 활동하며 우리 사회의 나라사랑 정신, 독립운동의 역사 등을 널리 알리는데 힘을 보태고 있다.

새봄, 우리 역사의 단면으로 남은 기념관에는 최덕휴 화백의 그림과 함께 그의 유품, 각종 기념품 등이 다양하게 전시돼 있어 찾는 이들에게 조국을 위해 애썼던 그의 정신과 작품세계가 오롯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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