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11월 광주여고에 다니던 장매성 선생이 주도해 박옥련, 고순례, 장경례 등과 함께 소녀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해 여성해방, 민족해방 등을 지향하며 함께 서적을 읽고 토론을 했다.

1929년 10월 30일 광주역 앞에서 한국인과 일본인 학생 간 충돌이 도화선이 돼 11월 3일 광주에서 학생독립운동이 시작되자 소녀회원들은 시위운동에 참여해 부상 학생을 돌보는 한편 물주전자를 들고 다니며 시위에 나선 학생들을 도왔다.

이후 장매성 선생 주도로 투쟁본부를 마련해 시위를 준비하며 등사판으로 수천 장의 격문을 인쇄해 11월 12일 시위현장에 배포했다.

이듬해 1월 15일 서울에서 여학생 연합시위가 발발하고 동시에 광주에서 여학생 12명이 검거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고, 이로써 전국적으로 시위가 이어졌다.

학생독립운동은 전국의 300여 개 이상의 학교와 5만4,000여 명의 학생들이 동맹휴교와 시위운동에 참여했으며, 3·1운동, 6·10만세운동과 함께 3대 독립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부는 1990년 장매성·박옥련·박현숙·장경례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저작권자 © 나라사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