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배 ‘불로부터(Issu du feu)’, 2021. 이미지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밝고 탁 트인 공간에 세 개의 거대한 숯 덩어리가 이목을 사로잡는다. 하나는 공중에, 두개는 바닥에 있고, 그 아래의 한지가 더욱 대조를 이루는 이 작품은 이배 작가의 ‘불로부터’이다. 언뜻 보기에 생명이 다한 것처럼 보이는 숯이 한 번 더 뜨겁게 불타오를 생명력을 지닌 것처럼 암울하기만 한 전 지구적인 재난의 그늘 속에도 새 희망이 움트고 있음을 상징하는 듯 하다.

세계적인 감염병 유행이 개인과 사회에 미친 영향을 동시대 예술가들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재난의 그늘 가운데서도 예술을 통해 삶의 의미를 성찰하는 전시 ‘재난과 치유’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8월 1일까지 열리고 있다.

아니카 이 ‘인간으로부터의 인간 해방’, 2020.

이번 전시는 프란시스 알리스, 리암 길릭, 서도호, 이배, 오원배, 써니킴, 최태윤 등이 코로나19를 주제로 한 신작을 선보이며, 에이샤-리사 아틸라, 노은님, 아니카 이, 질리언 웨어링, 미야지마 타츠오, 이영주, 칸디다 회퍼 등 국내외 35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전시를 통해 코로나19로 인해 멈춰버린 일상에서 감염병 발생과 확산을 둘러싼 징후와 현상을 각기 다른 관점에서 고찰하며, 팬데믹 속 사회적·개인적 현상을 기록하고 재해석한다.

이번 전시는 ‘감염의 징후와 증상’ ‘집콕, 홀로 같이 살기’ ‘숫자와 거리’ ‘여기의 밖, 그곳의 안’ ‘유보된 일상, 막간에서 사유하기’ 등 5가지 주제로 구성됐다. 전시장 안팎에서는 재난 상황에서 미술관의 역할 변화와 대안적인 전시 방향을 모색하는 위성프로젝트가 진행되며, 장소 기반 오디오 가이드와 집으로 가지고 갈 수 있는 향, 관객 참여형 촉각 관람도구, 온라인 스트리밍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한 실험적인 작업이 펼쳐진다.

1부 ‘감염의 징후와 증상’에는 사진가 그룹 신디케이트, 요제프 보이스, 아니카 이, 전인경, 이진주, 오원배, 박영균, 성능경, 김지아나가 근대 이후 신종 감염병 출현하게 된 징후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발생하는 사회적·개인적 현상들을 기록하고 재해석한 작업을 선보인다.

이진주 ‘사각 死各’, 2020. 

2부 ‘집콕, 홀로 같이 살기’에는 안드레아 지텔, 써니킴, 리우 와, 홍진훤, 무진형제, 차재민, 프란시스 알리스가 참여했다. ‘집콕’은 팬데믹 시대를 대변하는 용어가 되었다. 전염병을 피하기 위해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자발적 격리는 사람들 간의 물리적 거리를 만들어냈지만 다른 한편으로 온라인을 통해 모두가 연결될 수 있으며 서로 간의 직간접적 연결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한다.

 미야지마 타츠오 ‘부상당한 바이커(Injured Biker)’, 2020. 

3부 ‘숫자와 거리’에서는 리암 길릭, 미야지마 타츠오, 이지원(아키타입), 최태윤, 김범이 참여하여 팬데믹 시대에 숫자가 함의하는 중요한 정보와 징후를 다룬다. 일일확진자, 격리해제, 사망자, 국내현황, 세계현황, 거리두기단계와 같이 감염병의 진행상황을 지시하는 숫자와 정보들은 그날의 상태를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됐고, 단순한 숫자 이상의 함의를 가진다.

4부 ‘여기의 밖, 그 곳의 안’에서는 질리언 웨어링, 서도호, 이혜인, 칸디다 회퍼, 토마스 스트루스, 서승모가 참여해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경계와 의미, 역할 변화를 보여준다. 코로나19는 세계를 멈추게 했다. 1년이 훌쩍 넘었으나 도시, 공항, 공원, 광장, 미술관도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비대면의 삶이 물리적·시간적 공간의 경계와 간극을 흐리게 하고, 일상의 공간을 다르게 인식하게 함을 표현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5부 ‘유보된 일상, 막간에서 사유하기’에서는 노은님, 허윤희, 조나단 호로비츠, 봉준호, 이영주, 염지혜, 에이샤-리사 아틸라, 이배가 참여하며 삶에 대한 성찰과 인류와 지구를 위해 필요한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코로나19는 우리를 일상이 멈춰버린 오랜 막간에 머물게 한다. 이번 전시는 이 유보된 일상에서 인간 이외의 삶이 공존하는 이 지구에 긴 시간동안 인간이 가해온 행위를 되돌아보고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선다.

관람료 무료. 월요일은 휴관이며 매일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 수·토요일은 오후 9시까지 연장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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