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대 한국학 연구소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훈장 추서식에서 김노디, 안정송 애국지사의 후손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달 22일 하와이 현지에서 이뤄진 문재인 대통령의 고 김노디·안정송 애국지사에 대한 훈장 추서는 그간 국가보훈처가 추진해온 ‘정부 주도 독립유공자 발굴·포상’을 비롯해 ‘여성 독립운동 심사기준 개선’, ‘적극적인 독립유공자 후손 찾기’라는 적극행정의 결과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에 재조명 받고 있는 국가보훈처의 독립운동 관련 보훈 적극행정을 정리한다.

1. 정부 주도 독립유공자 발굴·포상

독립유공자 포상은 1949년 최초 실시된 이후 1962년에 본격 시작해 김구(대한민국장), 안중근(대한민국장), 윤봉길(대한민국장) 등 저명한 독립운동가에 대한 서훈이 이뤄졌다.

독립운동가 서훈 공적심사는 정부 내에서 문교부(국사편찬위원회, 1962), 내각사무처(1963), 총무처(1968)에서 담당해왔으나 1977년부터 보훈전담부서인 보훈처로 업무가 이관됐다. 이제까지 진행해오던 유족 등 신청 중심의 독립유공자 발굴·포상이 자료 확보의 한계 등에 부딪치면서 1995년부터는 ‘정부 주도’로 개선돼 포상 확대와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에 대한 국가책임 목표를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이 같은 정책의 전환으로 1995년 총 포상자 1,442명 중 약 76%인 1,101명이 정부 발굴로 포상됐으며, 이후 정부 발굴·포상 비율은 약 70~95% 수준을 유지해왔다. 지난 2018년부터 올해 광복절까지 집계에 따르면 전체 포상 인원 2,109명 중 정부 발굴자는 1,668명으로 약 79%에 이른다.

2. 여성·학생독립운동 심사기준 개선

국가보훈처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독립운동을 했음에도 포상을 받지 못하는 억울한 사례가 없어야 한다’라는 정책 목표를 갖고, 2018년 4월 독립유공자 포상 심사 기준을 대폭 개선·완화했다. 특히 독립유공자 포상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그간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여성과 학생 등에 대한 심사기준을 명확히 마련하기도 했다.

여성의 경우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감안해 일제 강점기 당시 생산된 객관적인 자료(신문, 판결문 등)에서 활동이 확인되지 않더라도 관련 인사의 일기와 회고록, 수기, 독립운동 참여 가족의 자료에서 독립운동 사실이 확인될 경우 포상을 검토하도록 개선했다.

학생의 경우도 종전 옥고 기간 등을 일반인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했으나, 독립운동으로 퇴학을 당한 경우에도 포상이 가능하도록 기준을 개선했다.

이 같은 조치로 1949년부터 2017년까지 전체 포상인원의 약 2%(299명)에 불과했던 여성 독립유공자는 2018년 이후 현재까지 241명 증가해 540명으로 늘었다. 학생운동의 경우 1949년부터 2017년까지 411명 포상됐으나, 2018년 이후 현재까지 256명을 포상해 현재 포상자는 667명에 이른다.

3. 미전수 해외 독립유공자 후손 찾기

국가보훈처는 대한인국민회기념재단(미국), 한중교류문화원·연변한인회(중국) 및 깜빼체한글학교(멕시코·쿠바) 등 해외의 한인사회 단체와 2018년부터 업무협약을 맺고 해외 거주 독립유공자의 후손을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왔다.

2019년부터는 한인이 다수 거주하는 지역의 현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후손회장이나 연구자 등을 ‘해외 독립유공자 후손 찾기 전문위원’으로 위촉해 협업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재외공관과 협력체계를 강화해 전수하지 못한 훈장의 주인을 재외공관 누리집에 게시하거나 현지 언어(영어·중국어·러시아어·스페인어)로 번역된 안내문을 제작·배포하는 등의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이번에 추서한 두 분의 독립유공자도 보훈처와 주 호놀룰루 대한민국총영사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하와이에 두 분 독립유공자의 후손이 생존해 있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훈장을 추서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는 독립유공자의 사망·매장증명서, 독립유공자와 수여자의 혈연관계를 확인하는 관련 서류 등을 일일이 확보하면서 공적을 최종 확인해 훈장 추서가 이뤄졌다.

훈장 추서된 김노디·안정송 지사의 헌신

1920년 3월 1일 구미외교위원부, 김노디 지사는 뒷줄 가운데.
1945년 8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한국파견 대표단, 안정송 지사는 첫 번째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이번에 독립유공자 훈장이 추서된 김노디 애국지사와 안정송 애국지사는 하와이 이민세대로 이국땅에서 조국의 자주독립에 대한 열망으로 독립자금을 모금하는 등 재정적으로 헌신한 분들이다.

김노디 애국지사는 황해도 곡산에서 태어나 오벌린대학 재학 중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제1차 재미한인대표자회의에 참석해 일본의 여성을 향한 잔학 행위를 폭로하고, 여성의 독립운동 참여 사실과 그에 따른 권리를 연설하면서 일찍이 여성독립운동의 기초를 닦았다. 김 지사는 대한부인구제회 임원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적극적으로 모집했고, 1921년부터는 미국 각지를 돌며 한국의 독립 필요성에 대한 선전활동을 벌였다.

안정송 애국지사는 평양 출신으로 한인합성협회 부회장, 대한인국민회 총회장 등을 지내며 하와이와 미주지역 독립운동에 큰 역할을 한 안원규 지사(1995년, 독립장)의 배우자로, 하와이 지역 학생들에게 민족의식과 어학을 가르쳤다. 대한부인회와 대한부인구제회의 임원으로 독립자금을 모집하고 해외 동포들을 후원하며 독립운동에 재정적 지원으로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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