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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열망 담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역경의 여정 곳곳에 독립 향한 열정 ‘생생’

기사승인 2018.09.03  14: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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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100년 ① 임시정부의 발자취를 찾아

   
▲ 중국내 임시정부 청사의 상징, 충칭의 연화지 청사. 해방의 순간까지 대한민국을 지킨 임시정부의 마지막 공간이다.
   
▲ 복원된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신흥도시로 성장하던 당시 청사는 국제 여론형성과 수집, 외교활동의 거점이었다.

1919년 3월, 그로부터 100년 그리고 2019년 3월. 한 세기의 세월이 흐른다. 그 세월은 절로 흘러간 것이 아니고 스스로 일어서기 위한,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한, 스스로를 반듯하게 만들어가기 위한 고난의 세월이었다. 내년은 ‘대한민국 100년’의 해가 된다. 3·1운동의 피맺힌 절규 100년이다. 그리고 임시정부를 세워 국호를 ‘대한민국’이라 명명하고 독립을 위한 치열한 대오를 세운 100년이다. <나라사랑>은 이번호부터 대한민국 100년을 넓게, 그리고 깊게 되새기는 장기기획을 시작한다.

유례없이 한반도를 뒤덮은 뜨거운 날씨만큼 임시정부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일은 뜨거운 일이었다. 100년을 앞두고 다시 찾는 임시정부의 흔적에서 들려오는 함성에 어떻게 화답할까.

 

복원된 상하이 세 번째 청사 되살아난 독립운동의 정신

   
▲ 충칭 연화지 청사의 김구 선생 흉상.

인천공항 8월 6일 오전, 2시간 채 걸리지 않아 도착한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처음으로 세워져 3년 여 활동한 첫 공간이다.

국토와 주권을 되찾아 ‘정식’으로 정부를 수립할 때까지 ‘임시’로 세운 정부. 1919년 4월 11일, 3·1운동으로 확인된 온 민족의 마음을 담은 결실이다. 임시정부는 1945년 광복으로 환국할 때까지 우리 민족의 대표기구이자 독립운동의 중심으로 역할을 한다. 이 시기,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이다.

첫발을 내디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곧바로 9월 러시아 연해주의 대한국민의회, 국내의 한성정부,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통합했다. 독립운동의 역량을 모으자는 여망의 결과다.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복원된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는 상하이 보경리 4호 청사다. 상하이 활동기간 마지막으로 사용한 청사로, 지난 1993년 4월 13일 복원됐다. 2001년 대대적인 개보수에 이어 2015년에는 상하이시와 독립기념관이 협력해 전시관을 재개관해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상하이 시내 중심가로 변한 청사는 화려한 백화점 건물 옆으로 옛 거리가 고스란히 살아있는 가운데 제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지 大韓民國臨時政府舊址’라 붙인 머릿돌과 팻말이 시대별로 새로 만들어져 곳곳에 붙어 있다. 전시관으로 들어서면 임시정부 활동을 소개하는 자료들과 당시 사무공간을 살려놓은 전시관, 영상자료 등이 찾는 이들을 반갑게 맞고 있다.

4월 11일 첫 의정원 회의가 열렸던 1호 청사는 김신부로(金神父路)에 소재했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고, 9월 11일 3·1운동 뒤 상하이와 한성 임시정부, 연해주 대한국민의회를 통합하는 개헌안을 통과시켰던 2호 청사는 하비로(霞飛路) 인근에서 올해 초 당시 지도를 분석한 끝에 그 위치가 확인됐다.

 

윤봉길 의거 현장 홍커우 공원 항일운동의 불꽃으로 살아나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는 3·1운동으로 불타오르던 독립의 열기, 이후 잠시 침체기에 들어서던 임시정부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게 했고, 독립운동의 대 전환점을 가져왔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는 홍커우(虹口) 공원 일제의 천장절(일왕 생일) 기념식에 참석한 사라카와 요시노리 일본 상하이 파견군 총사령관과 가와바타 사다쓰구 상하이 거류 일본단장 등 일제 수뇌부 7명을 처단했다. 식장에 던진 그의 폭탄은 독립운동의 큰 동력으로 돌아왔고, 윤 의사는 그해 12월 일본 가나자와 육군 형무소에서 총살형으로 순국하게 된다.

실제로 의거 이후 한중관계가 극적으로 회복됐고, 이후 임시정부에는 중국 국민당 정부를 비롯한 단체들의 재정지원과 협조가 이어졌다.

   

▲ 홍커우공원 역사 현장에 세워진

윤봉길의사기념관 내부.

홍커우 공원은 현재 중국의 국민적 영웅 루신(魯迅) 선생의 이름을 따 루신 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한여름 더위에도 시민들이 넘쳐나는 공원의 한편에 한자와 한글로 ‘윤봉길의사 생애사적전시관’이라 저긴 전시관이 자리잡고 있다. 붉은 색 사당형의 기념관에는 윤 의사의 호인 매헌(梅軒)이라는 현판이 붙여져 있었다. 이 간판은 일본을 의식해 매정(梅亭)으로 적혀 있던 것을 2009년 교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40여미터 떨어진 곳에는 의거 기념비도 함께 세워져 있다. 기념관 안팎에는 단호한 표정의 흉상과 그의 일생, 사형 직전의 모습 등이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윤 의사가 투탄한 곳으로 추정되는 곳은 전시관으로부터 20여 미터 떨어진 곳으로, 깨끗한 잔디와 조형 수목이 심겨져 있다. 실제 의거 터임을 알리는 표지석 하나 없지만 보는 이에게는 당시의 군중과 연단과 투탄, 그리고 이후의 혼란이 상상으로 펼쳐지기에 충분한 공간이다.

윤 의사의 의거 이후 임시정부는 안팎으로부터 주목을 받으며 다시 활력을 되찾게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일제의 체포작전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임시정부 요인들은 이를 피해 상하이를 떠나게 된다. 이들의 피난처 중의 한 곳이 자싱(嘉興)이다.

   

▲ 1939년 임정 네 번째 주석을 지낸

이동녕 선생 거주지.

의거의 배후로 지목받아 현상 수배된 김구 선생의 피난처는 자싱 매만가 76호. 이곳은 당시 절강성 성장의 수양아들의 별채로 사용되던 공간이다. 선생은 이곳에서 광동 출신 중국인으로 이름을 바꾸고 생활했다. 당시 2층 침실에서는 1층으로 통하는 비상구, 배를 타고 탈출할 수 있는 호숫가 비상 쪽배가 항상 준비돼 있었다.

자싱에는 김구 선생 숙소와 멀지 않은 곳 남문 일휘교 17호에 임시정부 요인 숙소가 남아있다. 이동녕, 김의한, 박찬익, 엄항섭 등 요인들이 가족과 함께 거주했던 공간도 복원됐고, 전시실이 마련돼 당시의 힘들었던 삶과 활동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게 해 놓았다.

 

항저우 역경의 이동시기 간판 안고 ‘살아남은’ 흔적들

1932년 5월 상하이를 떠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정착한 곳은 항저우(杭州). 1935년 11월까지 이곳에 머물렀던 임시정부는 그야말로 ‘역경의 이동시기’를 통과하게 된다. 일제의 추격에 계속되는 상황에서 피신하고 이동하고를 거듭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임시정부는 1932년 5월 15~16일 국무회의를 열어 국무위원의 업무를 조정하는 등 조직을 재정비하고 외교와 재정, 군사 등 독립운동 단체 최고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했다. 특히 1933년 5월에는 김구 선생과 장제스(蔣介石)의 회담을 통해 중국 국민당의 재정적 지원을 약속받기도 했다.

항저우 첫 청사는 청태제2여사(여관) 32호실. 현재 호텔로 운영되고 있는데 임시정부는 국무위원회를 개최하면서 이곳을 청사로 사용했다. 이후 국민당 정부 주선으로 장쟁로 호변촌 23호에 청사를 옮겼고, 다시 판교로 오복리 2가 2호로 옮겨가며 활동을 이어갔다. 당시는 임시정부 요인들이 중국 정부와의 교섭과 함께 일제 정보망을 피하기 위해 난징과 자싱 등으로 흩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찾은 곳곳의 청사는 당시의 힘들었던 여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청태제2여사의 경우 평범한 중소규모 호텔로 남아 있었다. 어렵게 찾은 32호실은 일반 객실로 사용되고 있었으며, 호텔이나 객실 어디에도 임시정부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다행히 두 번째 청사인 호변촌(湖邊村) 청사는 당시 2층이었던 목조 건물을 증축했고 2014년 중국 국가급 항전 시설로 지정되면서 전시물을 보완해 방문객을 맞고 있다.

함께 찾아본 한국독립당 사무소터인 사흠방(思 坊)과 오복리 유적지는 개인 사유지로 남아 내부를 확인할 수 없는 상태였다. ‘한국독립운동(항주)구지’라고 쓰인 표지석만이 유일하게 이곳이 임정요인들의 생활과 활동 터전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충칭 청사 과거와 오늘이 만나는 계단 마지막 임시정부, 대한민국의 오마주

충칭(中京).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해방의 감격을 맞은 곳이자, 마지막 청사가 소재했던 곳이다. 충칭 시절 임시정부는 한국 독립운동의 대표 기구의 체계를 다시 정비할 수 있었다. 독립이라는 목표 아래 좌우합작으로 이룬 정부 조직과 함께 한국광복군으로 대표되는 군사력을 보유했다.

1940년 9월 17일 창설된 한국광복군에는 1941년 7월과 1942년 4월에 한국청년전지공작대와 조선의용대가 각각 편입되면서 명실상부한 독립운동의 대표 군사단체로 인정받게 됐다.

1944년 4월에는 대한민국임시헌장이 공포되면서 법적 기반도 마련했다. 임시헌장에 따라 다양한 인사들이 함께 임시정부에 참여하게 됐다. 이렇게 대오를 정비한 임시정부는 국군의 뿌리가 된 한국광복군을 중심으로 국내침투작전 계획한다. 광복군은 이미 인도와 버마(미얀마) 전선에 활동한 인면전구공작대와 미국전략첩보기구 OSS와 합작하며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1945년 8월 일제의 갑작스런 항복으로 광복군의 국내진격은 무산됐고, 충칭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임시’의 간판을 떼고 환국을 준비하게 된다.

충칭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로 기억하는 연화지 청사는 1940년 9월 치창에서 충칭으로 옮겨온 이후 양류가, 석판가, 오사야항에 이어 입주한 네 번째이자 마지막 청사. ‘유중구 칠성강 연화지 38호’의 연화지청사는 1945년 1월부터 11월 김구 주석 등 요인들이 광복을 맞아 환국할 때까지 임시정부의 마지막을 지킨 곳이다.

   

 2018년 8월 10일,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국외독립운동

사적지 탐방에 참여한 전국의 사회과 교사 30여 명이

김구 선생과 임정요인들이 환국을 앞두고 기념촬영을

했던 그 계단에 섰다.

깨끗하게 정비된 주택들과 정부와 당 관련 청사를 지나 만나게 되는 연화지 청사는 여느 조금 규모가 큰 양옥집의 형태로 보인다. 좌로부터 쓴 한글 ‘대한민국 림시정부’ 글자 아래 한자와 영문으로 또박또박 붙여진 글자가 대한민국 100년 광복 73년의 역사를 비치는 듯했다.

출입문을 들어서면 만나는 익숙한 계단이 눈에 띈다. 1945년 11월 3일 김구 선생을 비롯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이 환국 20일을 앞두고 태극기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한 바로 그 계단이다. 지난해 12월 16일에는 중국을 국빈방문 한 문재인 대통령이 같은 자리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이름으로 기념촬영을 했다.

73년의 공간을 마주하며 만난 ‘임시정부’와 자랑스런 ‘대한민국 정부’가 선 공간, 그 시간은 현재가 과거를 극적으로 오마주(특정 장면을 차용해 그 장면이나 작품에 존경을 표하는 것)하는 현장이었던 셈이다.

한동안 여관, 학교, 주택 등으로 사용되던 청사는 대외인민우호협회와의 협정으로 1995년 8월 11일 복원 완료돼 ‘중경 대한민국임시정부 구지 진열관’으로 개관됐다. 2000년 독립기념관 협조로 건물의 전면 보수와 전시내용을 보완해 그해 9월 개관,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임시의정원 회의실, 김구 주석 집무실, 국무위 회의실, 외무부장 집무실 등이 원형 복원됐으며 충칭시기 임시정부 수립과 활동이 전시돼 있다.

이 공간은 우리에게 소중한 임정의 살아있는 역사이지만 중국으로서도 한중 양국 국민이 공동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저항했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아쉬운 것은 최근까지 보존이 확인됐던 오사야항 청사와 광복군 총사령부가 모두 헐리고 황량한 벌판으로 남았다는 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기 위해 차단막을 쳐 놓은 청사와 사령부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가끔씩 지번을 어렵게 찾는 학자들과 답사팀만 아쉬운 한숨만 내쉴 뿐이다. 재개발 등이 완료되면 복원할 예정이라는 충칭시의 약속을 기다리며 제 터를 찾아 다시 돌아올 유적들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 사라진 유적. 충칭의 오사야항 청사.
   
▲ 광복군 총사령부가 있었던 자리. 재개발 완료 후 복원될 계획이다.

 

충칭을 마지막으로 임시정부 발자취 따라잡기가 마무리됐다. 충칭의 임시정부 유적도 오늘 새로운 대한민국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특별취재반> 공동기획: 국가보훈처 ‘ 나라사랑’, 독립기념관독립운동사연구소 

나라사랑신문 news@narasaran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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