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란히 앉아 서로의 자식 소식을 전하며 대화를 나누는 송태훈 어르신과 최해숙 섬김이.

그야말로 푹푹 찌는 여름날 가만히 있어도 등줄기로 땀이 뚝뚝 떨어지는 날씨, 서울시 용산구의 한 작은 아파트에서 송태훈 어르신(87)과 서울지방보훈청 소속 최해숙 섬김이(56)가 자식 이야기, 사는 이야기들을 두런두런 나누고 있다.

“말이 통해서 참 좋고,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하니 이보다 좋은 친구가 어디 있겠어요. 내가 아는 최 여사는 경우가 밝고 다정하고 그리고 참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거든. 최 여사가 오면 혼자 사는 집이 밝아져서 아주 좋아.”

그는 고향 순창에서 지역 치안을 담당하던 남편을 불의의 사고로 먼저 떠나보내기 전까진 경찰인 남편과 시부모, 친정부모를 모시며 엄마, 아내 역할에 봉사활동까지 평범하면서도 보람찬 가정을 꾸리고 살았다. 사명감 넘치고 자상한 남편을 잃은 뒤 그는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해 방황했다.

효심 또한 남달랐던 그는 마음을 추슬러 돌아가신 부모님 대신 국가유공자 어르신들을 돌보기로 결심하고 정든 고향을 떠나 자식들이 있는 서울에 자리 잡았다. 굳게 믿고 의지했던 남편을 잃고 생긴 마음의 병이 서서히 치유되기 시작한 것도 섬김이 일을 시작한 그 무렵이었다.

“저의 존재가 먼지처럼 느껴졌을 때 오히려 제 손을 잡아주신 분이 어르신들입니다. 보잘 것 없는 저를 딸처럼 대해주고, 기다려주고, 의지해주는 것이 너무 좋아서, 너무 따뜻해서 최선을 다해 섬겼죠. 제 부모님이나 남편은 이미 세상에 없어서 잘해주고 싶어도 못하는데, 이분들은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으로 그렇게 모시고 있어요.”

섬김이 활동은 그에게 보살핌을 받는 어르신에게나 그에게나 커다란 활력을 주었다. 홀로서기 해야 하는 인생이 만만치 않은 일이었지만, 그는 천성이 활달하고 배려심 깊은 성격이었고, 부모님과 같은 국가유공자 어르신을 돌보기 시작하면서 힘을 얻어갔다.

자신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서도 삶의 의지를 꽃피우고 그 옛날 조국을 지키기 위해 입은 상처까지도 고스란히 안고 묵묵히 살아가는 국가유공자, 미망인 어르신을 뵙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희망이었다. 지금 그는 ‘따뜻한 보훈’을 누구보다 일선에서 실천하며 재가복지대상자 어르신을 부모처럼 모시고 있다.

“저는 어르신 모두를 같은 마음으로 대하지만 특히 더 마음을 쓰고 도와드려야 하는 어려운 분들이 계시죠. 특히 오랜 기간 모시던 어르신이 제 손을 떠나 요양병원으로 가시는 뒷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아파요. 요양병원으로 보내드리고도 마음이 쓰여 쉬는 날이면 그곳을 찾아가 말벗도 해드리고, 필요한 것도 가져다 드려요. 저 스스로도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 마음이 통했을까. 돌아가시기 전에 ‘내 딸 어딨느냐’고 찾는 어르신도 있었다. 그는 밤새 눈물 흘리며 어르신의 임종을 지켰다. 그 후로는 어르신들이 곁을 떠나는 것이 너무 슬퍼 고달픈 일이 있더라도 어르신들이 필요한 일은 최대한 해결해 드리기로 마음먹었다.

집에 식사를 마련할 수 있는 가전, 식기를 전혀 갖추지 못한 어르신께는 밥솥과 밥그릇을 장만해드리고 북에 계신 어머니의 손맛을 그리워하는 어르신께는 ‘전라도 아짐씨’ 솜씨를 발휘해 작은 성의나마 담아 소박하게 한정식 밥상을 차린다. 암 투병 중인 어르신의 고통과 애정결핍을 불평 없이 받아내는 것도 그의 몫이다.

“남편은 항상 ‘부자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고, 보람 있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었어요. 지금 제가 남편 뜻을 지키면서 살고 있는 셈이죠. 정년 이후 저는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일을 할 거예요. 제가 모시는 모든 부모님들의 버팀목, 의지처로 남아 있을 겁니다.”

자신의 아픔과 어르신들의 사랑을 설명하며 눈시울을 붉히던 그의 목소리가 다시 명랑하게 돌아왔다. 다시, 그를 기다리는 어르신들 곁으로 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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