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7일, 6·25전쟁 유엔군 참전의 날을 앞두고 부산 남구에 위치한 유엔기념공원으로 향한다. 그늘을 드리우는 비구름이 오가며 이곳의 풍경과 분위기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부산 유엔기념공원 중앙에 자리잡은 유엔참전용사 묘역.

유엔기념‘공원’이라는 명칭이 붙어있지만 이곳은 사실 ‘묘지’에 더 가깝다. 우리나라의 평화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수많은 유엔군전몰장병들이 안식을 취하고 있는 곳으로, 모든 조경과 시설이 묘지를 중심으로 서 있다. 따라서 이곳은 성역처럼 다소 위엄을 갖추고 자리잡은 듯 느껴진다.

거대한 네 개의 기둥과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을 품은 수려한 곡선이 더해져 기품이 느껴지는 정문을 지나면 정면으로 묘역으로 향하는 입구가 열려있고, 우측으로는 추모관이 눈에 들어온다. 추모관 내부에는 유엔참전용사들의 일생과 가족에 대한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마침 지난해 이곳을 방문했던 영국 참전용사 제임스 그룬디의 인터뷰 영상이 흘러나왔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2월 참전해 전국의 전투현장을 다니며 아군의 주검을 되찾아는 시신 수습팀(Recovery Unit) 임무를 맡았던 그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년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해 자신이 수습했던 전우들의 묘역을 살펴왔다. “우리가 지켜낸 가치를 잊지 말아달라”라는 그의 당부가 공간을 울렸다.

묘역 입구 벽에는 어디에 누가 안장돼 있는지 알 수 있도록 배치도와 안장자 현황이 표시돼 있다. 안장자 대부분의 나이는 19세에서 20세의 젊은이들. 수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움과 먹먹한 애도와 동시에 절절한 감사를 느끼며 이 벽 앞에 섰을지 눈에 훤히 보이는 듯 했다.

주묘역은 각 나라별로 묘비가 세워져 있다. 주묘역 상단은 상징구역. 이곳엔 참전 22개국과 대한민국의 국기와 유엔기가 게양되어 있었고 터키, 그리스, 뉴질랜드, 노르웨이 등 여러 나라의 기념비가 전장에서 스러진 이들을 기리고 있었다.

주묘역 하단을 가로지르는 수로에는 항상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있다. 이곳은 17세의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최연소 안장자인 호주 참전용사의 이름을 따라 도은트 수로로 명명됐다. 삶(녹지지역)과 죽음(묘역) 사이의 경계로 도은트 수로는 신성함마저 느껴진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생과 삶의 경계, 수로 속에는 작은 물고기와 수초가 찰랑이고 있다.

묘역을 뒤로 한 하단의 녹지지역은 2015년 이후 돌아가신 참전용사의 묘역과 여러 나라의 참전비, 추모비가 들어서 있다. 왼편으로 수반을 품은 유엔군 전몰장병 추모비가 보인다. 우주를 뜻하는 원형 수반 안에는 철모가, 맞은 편에는 연꽃이 조화를 이루고 있고, 갑자기 내린 비로 잔잔한 물결이 일렁인다. 검정색 명비에는 실종자를 포함해 전사자 4만 여명의 이름이 끝도 없이 새겨져 있다. 치열했던 전쟁과 그 희상자의 아픔만큼 여운이 길다.

유엔기념공원 일대는 2011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국제연합의 유엔평화문화특구로 지정됐다.

유엔평화기념관 전경.

유엔평화기념관은 유엔기념공원을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에 서 있다. 유엔참전국의 국기가 게양된 광장을 지나 기념관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에 ‘유엔자유수호 남·여신상’ 청동부조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가득 채워진 남녀 형상의 웅장한 청동부조는 남녀가 각각 칼을 차고 횃불을 든 모습으로 평화와 자유를 수호하고자 하는 강렬한 기개를 자랑하고 있다.

기념관은 2014년 개관 이래 연간 10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명소로 자리잡았다. 지난해만도 13만명이 다녀갔다. 전시관은 한국전쟁실, 유엔참전기념실, 유엔국제평화실 등 3개의 상설전시관과 기획전시관, 4D영상관 등으로 구성돼있다. 6·25전쟁의 발발 배경부터 전개, 참전 유엔국의 역할과 참전자들의 생생한 전언과 사진 등으로 꾸며져 있다. 전쟁을 겪지 않은 이들에게는 참전용사에 대한 감사와 기억의 공간을 전달하는 공간이자 더 나아가 평화와 희망을 꿈꾸는 공간으로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70년 전 이 땅에 뿌려진 평화의 씨앗은 미래를 그려내는 기념관과 함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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