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탓일까, 요즘은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며 추억을 뒤적거리며 보내는 시간이 잦다. 책장을 넘기듯 기억 속을 헤매다보면 이런 것, 저런 것들이 더러 나온다. 그 가운데는 잊고 싶은 것도 있지만 괜히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것도 있다.

얼마 전에 집을 옮기면서 이삿짐을 꾸리다가 발견한 편지 한 장이 있는데 그것이 자꾸만 과거를 흔들어 깨운다. 이제는 까마득히 잊혀져 기억에서도 희미해지고 있는데 책갈피 속에서 나타난 것이다.

편지만 몇 번 나누었지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 그러면서도 10여년 가까이 마음 속에 두고 행복을 기원했던 사람, 그러다가 그만 30여년을 책갈피 속에 놓아두고 잊고 지냈던 사람. 지금도 내 머릿속에는 몇 장의 편지로만 남아있는 사람이다. 어찌보면 내가 나답지 않은 일을 했기 때문에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건 아닌지, 이런 저런 생각들이 엉켜 떠오른다.

40대 초반 어느 날인가 J일보 사회면에 이런 기사가 눈에 들었다. ‘최00양과 김00양은 속초 중앙초등학교 4학년 같은 반에 다니는 짝꿍 친구다. 어느 날 김 양은 친구 최 양 집에 놀러갔다가 깜짝 놀란다. 아버지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아침저녁 식사까지 시중을 들지 않으면 안될 만큼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후사정을 알고 본즉 6·25전쟁 때 팔다리를 모두 잃은 상이용사를 아버지로 둔 최 양은, 8살 때 간암으로 어머니마저 잃고, 상상하기가 어려운 힘든 생활을 꾸려나간다. 친구 김 양은 평소에도 가깝고 친하게 지냈던 터였지만, 그 사실을 안 그날 이후로 친 자매처럼 학용품도 같이 쓰고, 용돈도 나누어 쓰며 지냈다. 김 양 어머니는 딸의 도시락을 쌀 때 최 양의 도시락까지 같이 챙겨주었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저들을 조금이나마 도와줄 수 있을까 생각하던 차에 당시 최 양의 나이가 우리 아들 녀석하고 같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고민하지 않고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지만 형편 닿는 데까지 학교에 드는 납부금을 지원해주는 것으로 결정하고 바로 그달부터 송금하기 시작했다. 최 양이 고등학교 3학년을 다닐 때까지 했으니 한 10여년 가까이 인연도 계속 됐던 것 같다. 그러고는 과거 일이라 잊고 지냈는데 어느날 이삿짐 속에서 그 흔적이 나타났다. 기억의 소환이랄까.

오늘 같은 정보화시대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그를 찾을 수는 있겠지만, 아름다운 기억은 그것만으로도 족한 것.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런 생각을 가졌던 40대의 나에게 참 고맙다. 덕분에 오늘 그런 추억을 안고 살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모처럼 나이 들어 오늘의 나에게 칭찬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칭찬을 몰래 가슴에 묻어둔다. 최 양도 지금쯤은 초로의 문턱에서 지난날의 어려움을 보석으로 만들어 행복한 삶을 꾸려가고 있으리라 믿는다. 

장진수 6·25전몰군경 유자녀. 오랜 기관 통신 관련 회사에서 근무했으며 현재는 세계여행을 다니며 여행기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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